지금으로부터 사천이백칠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사회라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발달되지 못하였다. 나라─국가라는 것도 아주 분명치 못하였다. 사람이라는 것은 짐승과 달라서 머리가 총명하여 짐승같이 단지 천연적 물건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힘으로 좀더 어떻게 잘살아 보자고, 농사짓는 법도 발명하고, 사냥이며 고기잡이도 하며, 집을 지어서 대자연의 덥고 추운 것을 방비하며─이렇게 나날이 더 잘살아 갈 방법을 연구하며 실행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되니까 저절로 농사 잘 짓는 사람은 평지에서 살고 고기잡이 잘하는 사람은 강변이나 바닷가에서 살고 사냥 잘하는 사람은 산으로 가고─이리하여 부락(部落)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고 동리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형제 부자끼리도 그닥지 않은 일에 다투고 싸우는 일이 흔히 있다. 실수하는 일도 흔히 있다. 이런 때는 어른이 있어서 다툼은 말리고, 실수는 안 하도록 지도하여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남남끼리로 조직된 부락이나 동네에는 지도하고 중재할 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추장(酋長)이며 동리 어른이 필요하게 된다.
부락이며 동네가 많아지면, 부락부락끼리, 동네동네끼리의 지도자가 또 있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여러 부락이며 여러 동네를 합친 꽤 넓은 지역(地域)을 지도하고 지배할 사람이 있어야한다.
여기서 임군이라는 높으신 이가 계시어야 되게 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사천이백칠십여 년 전에 부여(扶餘) 계통의 여러 부락들이 의논하여 임군으로 추대한 거룩하신 분이 단군(檀君)이라 일컫는 분이다.
부여 계통의 민족이 몇 만 년 몇 십만 년 전부터 이 동반구에 살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단군이 임군이 되실 때는 지금의 만주군 전부와 조선 반도의 전부가 거지반 부여족의 동리 동리뿐이었다. 다른 민족도 간간 끼기는 하였으나 이 넓은 지역은 대개가 부여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지라 처음 단군께서 임군이 되실 때는 단군이 계신 그 근처의 지역─지금의 압록강 류의 사면 수백 리의 임군이셨지만, 나도 나도 하고 뒤따라 부락 동네들이 단군께 심종하여 지금 조선 반도의 절반 이상과 지금 만주국의 대부분이 단군의 치하(治下)에 들게가 되었다.
이 민족은 서로 싸우고 다투고 한다는 일─즉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나라에는 군사가 없고 무기(武器)는 단지 사냥을 하고 고기를 낚기 위한 것뿐이었다. 무슨 다툼이 있으면 말로 끝막아 중지시키고 검소 질박하고 반드시 제이마에서 땀을 흘려서야 먹고 입을 것을 구할 줄 알고 욕심이 없고─땅이 기름지고 산수가 청명하고 산물이 풍부하니 전쟁이라는 것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위로는 거룩하신 임군이 계시고 아래는 순후한 백성이 있으니 그야말로 태평건곤으로서 꿈과 같은 아름다운 나라이었다. 이리하여 단군의 창업하신 거룩한 나라이, 태평건곤 가운데서 수십 대를 보내고 세월이 일천이백여 년이나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