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
방안에 앉아서 추녀 아래로 보이는 하늘을 무심히 우러르고 있을 때에 휙 지나간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낙엽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 나는 새일 것이다.
소년이라 보자면 아직 소년이요 청년이라 보자면 넉넉히 한 개 청년이 되었을 나이의 공자. 현재 이 나라의 왕세자요 장차의 임금이 될 지존한 소년 공자였다.
오늘 우러르는 하늘이나 어제 본 하늘이나 같은 빛〔色〕과 빛〔光〕의 하늘이었다. 명랑하였다. 밝았다. 장쾌하였다. 천 년 전에도 그 빛이었을 것이다. 천 년 뒤에도 또한 그 빛일 것이다.
그러나 작년 이맘때, 꼭 이 자리에서 그 하늘을 우러르던 그 날의 심경(心境)과 오늘의 심경은 왜 이다지도 다른가.
“전하. 아버님. 상감마마.”
속으로 두 번 세 번 불렀다. 공으로 보자면 임금이요, 사로 보자면 아버님 되는 분을 속으로 부르고 또 부르는 동안, 이 소년(청년일까)의 눈시울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진실로 마음이 괴롭고 아픈 입장이었다.
어찌하랴.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동궁(東宮)이라는 지위는 결코 아깝지 않다.
아깝지는 않으나―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밝고 명랑한 하늘을 우러러보기는 하지만, 마음은 조금도 명랑하여지지 않는다.
아까도 겪은 바였다. 임금이요 겸하여 아버님되는 분에게 아침 문안을 갔더니, 아무 까닭도 없이,
“너같은 것이 장차 임금이 되었다가는 나라를 죄 망쳐 놓으리라.”
책망이었다. 이것은 아버님과 아들, 더욱 맏아들이라는 사삿 인연으로 볼지라도 좀 지나치는 책망이거니와, 더우기 자기의 현재의 위가 세자(世子)이니만치, 세자에게 대한 대접으로는 더 못할 일이다. 그 위에 아무리 살펴 생각하여도 아무 책망들을 연유도 없는 것을….
아버님의 심경을 모르는 배도 아니다. 아버님은 세자의 위를 자기에게서 떼어서 세째 동생되는 충녕(忠寧)에게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만한 구실(口實)이 없기 때문에 화와 역정만 내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