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李孝石)
1907~1942. 강원도 평창 출생.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적인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의 작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도시와 유령> <마작철학> <깨뜨려지는 홍등> 은 도시 빈민층과 노동자, 그리고 기생의 삶을 통하여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3부작 <노령근해> <상륙> <북국사신>에서는 관능적이며 성적인 인간 본능을 폭로하기도 했다.
저서에 <메밀꽃 필 무렵> <돈> <석류> <화분> 등이 있다.
나혜석(羅蕙錫)
1896~1948. 경기도 수원 출생. 부친 나기정(羅基貞)은 대한제국 때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시흥 군수를, 일제시대 때에는 용인 군수를 지냈다. 나혜석은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 그녀가 일본 유학시절 발발한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21년 3월에는 경성일보사 내청각(來靑閣)에서 조선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유화 개인 전람회를 열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1926년 남편 김우영과 함께 3년간의 유럽 일주 여행 도중 천도교 신파의 우두머리였던 최린(崔麟)을 만나게 되고, 김우영과 절친한 친구사이였던 최린은 나혜석과 불륜의 관계로 발전하고, 결국 나혜석은 김우영에게 이혼을 당하였다. 결혼생활 실패 후 화가로서의 삶에 더욱 매진한 나혜석은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정원>으로 특선하고 이 작품으로 일본에서도 제국미술원전람회에서 입선하였다. 1935년 10월 서울 진고개(충무로) 조선관에서 개최된 소품전의 실패와 아들 선이 폐렴으로 죽은 후 나혜석은 불교에 심취하였다. 승려생활에 매력을 느껴 수덕사 아래 수덕여관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불교에 심취했으나 불가에 귀의하지는 않았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한때 청운양로원에 의탁하기도 하였으며 1948년 12월 10일 시립 자제원(慈濟院)에서 사망하였다. 1918년 <경희> <정순>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회화작품으로는 <나부>(1928), <선죽교>(193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