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사람들은 고래를 먹어선 안 되는 영물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쩌다 고래를 사냥하게 되었을까?”
반구대 암각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인류 최초의 포경에 관한 기록을 담은
우리 문화의 원형(Archetype)을 되짚는 민족의 대서사시!
문명의 여명기에 살았던 이들의 권력다툼과 사랑, 예술혼, 지혜와 용기
울산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절벽에 그려진 반구대 암각화를 소재로, 기원전 4000년경 문명의 여명기에 살았던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고래를 신성하게 여겨 고래잡이를 금기시하던 큰어울림가람(태화강) 부족을 중심으로, 으뜸 자리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권력다툼, 이뤄질 듯 이뤄지지 못하는 애절한 사랑, 마을 사람들의 생존을 둘러싼 갈등과 협력, 혹독한 환경에 맞서 삶을 헤쳐나가는 이들의 지혜와 용기가 실감 나게 펼쳐진다. 가혹한 처지에서도 암각화 제작에 열정과 예술혼을 불태우고, 더 넓은 삶의 지평을 향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호랑이, 사슴, 멧돼지, 인물상 등 총 300여 점에서 이끌어낸 상상력으로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초기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상을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쳐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큰어울림가람 부족 사람들의 삶에서 배신과 음모, 증오와 아픔보다는 공존과 지혜, 용서와 온기가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생존과 경쟁보다는 상생과 협력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애쓴 작가의 의도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4000년경 태화강 반구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국보 28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는 높이 3m, 너비 10m 크기의 바위에 300여 점의 물상이 아로새겨져 있다. 58마리에 이르는 고래와 상어, 사슴, 양, 멧돼지, 호랑이, 범, 여우, 늑대, 족제비 등의 동물, 그리고 14명의 사람과 5척의 배, 사냥도구 등이 등장한다. 특히 귀신고래, 범고래, 북태평양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향고래, 돌고래 등의 생김새와 습성 등이 매우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배를 타고 고래잡이를 하는 모습, 울타리, 그물, 작살, 활 등의 사냥도구와 옆모습을 한 사람 전신상도 볼 수 있다.
구광렬 작가가 반구대 암각화를 찾은 것은 2007년, 울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시(詩) 창작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과 언양 대곡천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였다. 그는 대곡천 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를 보고는 엄청난 기에 눌려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갑자기 신이 내린 무당처럼 글을 써야겠다는 운명적인 느낌을 받은 것도 그때였다. 그날 이후 있는 대로 관련 자료를 뒤지고 가슴 한켠에는 스토리를 계속 축적해갔다. 기원전 4000년경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초기의 시대적 생활상과 명명법(命名法), 고래의 종류와 포경방법, 배 만드는 방법, 그 당시 생태 환경에서 살아간 식물과 동물 등 고증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 만만치 않은 숙제로 다가왔지만, 수많은 사람을 만나 하나하나 고증해가면서 당시의 종합적인 생활상을 소설 속에 녹여낼 수 있었다. 작가는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암각화를 새겼을까 하는 의문”을 품은 채 틈만 나면 반구대를 찾았고, 방대한 자료 수집과 면담을 거쳐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통찰력을 동원해 그에 대한 퍼즐을 맞춰가듯 마침내 반구대 암각화에 관한 최초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해냈다.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 이들의 갈등과 화합
소설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족장이 세습의 형태로 고착화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반란을 도모하며 긴장과 갈등에 휩싸이는 큰어울림가람 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으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는, 두 아들 중 한 명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최고 권력을 꿈꾸는 큰주먹과 권력보다는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그리매가 그들이다. 그리고 그 둘 모두는 아리따운 처자 꽃다지를 마음에 두고 있다. 2부에서는 하가 차지하고 있던 으뜸 자리를 찬탈한 갈의 횡포가 그려지고, 그가 독살당한 후 작이 으뜸이 되면서 반항하는 큰주먹이 내쫓기는 상황이 펼쳐진다. 큰주먹은 그리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꽃다지는 그 누구의 여인도 아닌, 마을의 큰어미로 거듭난다. 3부는 꽃다지와 작의 무리가 이웃 부족에게 끌려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들은 큰주먹과 그리매는 꽃다지를 구하기 위해 이웃 부족에 잠입한다. 마침내 끌려갔던 사람들이 다시 마을에 돌아오고, 큰주먹은 마을의 으뜸으로 올라선다. 하지만 큰어울림가람 부족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부족민 수가 늘어나면서 마을은 식량난에 휩싸인다. 큰주먹은 그리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리매는 그간 고심을 거듭하며 연구해온 고래잡이를 제안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인물은 제각각 자신만의 캐릭터를 지녔다.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꽃다지, 그리매, 큰주먹, 매발톱, 얼레지, 마타리, 여우주둥이, 각시붓꽃, 하, 갈, 작, 탁 등 모든 이들이 7,000년 전 선사 세계에서 걸어 나온 듯 개성적이며, 그들의 사고와 언행, 판단과 행동에 사실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꽃다지와 큰주먹, 그리매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욕망과 애증, 갈등, 증오를 딛고, 더 큰 세계,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세 주인공의 성장기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소설로 되살아난 우리 문화의 원형으로서의 반구대 암각화
큰어울림가람, 큰볕터 등 부족 이름을 비롯하여 꽃다지, 그리매, 큰주먹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순우리말이다. 그 이름은 그대로 그들의 개성이나 역할로 되살아난다. ‘사슴 같은 놈’, ‘얼음을 묻을’ 등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굴욕적인 욕이나 나이, 배, 땅 등을 세는 표기 방식, 으뜸, 버금, 당골레, 알리미 등 부족 내에서 각기 나눠맡은 역할 등은 독자들에게 호기심과 함께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7,000년 전 부족사회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작가가 쏟은 노력이 어느 정도였을지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큰어울림가람이라는 부족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이 힘과 권력으로 다스려지는 집단이 아니라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크게 어울림이란 우두머리와 끄트머리가 둥글게 맞닿음을 뜻하며, 둥글기 위해서는 결국 제 살을 떼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리매와 매발톱, 꽃다지, 나중에는 큰주먹까지 주인공들은 집단의 안녕을 위해 제 살을 떼어주는 희생을 자처한다. 또한 화합을 위해서는 한 가지 시선으로 타인을 보아서는 안 되며,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용서와 포용의 메시지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는 오늘 이 순간의 역사를 사는 우리 자신이 새롭게 써나갈 앞으로의 역사를 위해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곳을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준다.
반구대 암각화 이야기를 담은『꽃다지』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우리 문화의 원형을 되짚고 있는 민족의 대서사시”이며, 원시의 돌로 바위, 아니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긴 역사 속 한 페이지는,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 7000년 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