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말하면 마을 사람들은
죄다 입을 다물어버리기 일쑤였다”
끝나지 않은 전쟁과 남겨진 이들의 굴레
◎ 도서 소개
여수를 비극의 고장으로 만든 또 다른 사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8월 3일, 전라남도 여수 안도의 이야포 바다 위에서는 미국 공군기에 의한 피난선 학살이 자행됐다. 《두 소년》은 이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 증언과 마을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자료 조사를 거쳐 가공한 르포소설이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도 세계의 어딘가에서는 포성이 멈추질 않는다. 외세의 침입이 일상이었던 이 땅에서 한국전쟁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각자의 명분을 내세운 전쟁에서, 그러나 명분 없는 죽음들도 있었다. 노근리 사건으로 알려진 비극에서도 영문을 모른 채 죽어간 양민들이 있었다. 이런 또 다른 사건 하나가 세상에 알려져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여수 안도의 이야포 사건이다.
부산을 떠난 피난선이 여수 앞바다를 지날 즈음, 경찰은 웬일인지 배를 정지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 피난민들이 8월의 땡볕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미국 공군기가 이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어버린 것이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총에 맞아서, 혹은 파편에 맞아 숨져 갔고, 일부는 폭파되는 배와 함께 수장되어 버렸다.
이 사건의 생존자들은 숨을 죽인 채 사건에 대해 발설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세상이 민주화되면서, 생존자와 목격자 증언이 하나둘 나왔고 드디어 정부에서도 이야포 사건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에 나섰다. 그 결과, 여수의 안도 이야포 해변에는 그날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졌다.
《두 소년》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건을 좇아 ‘사실’ 너머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자 양영제는 여수 토박이다.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아버지의 무덤》으로 등단한 저자는 여순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르포소설 《여수역》(2020)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끈질기게 책임을 묻는다. 여순사건의 심층 구조를 치밀하게 드러낸 전작 《여수역》 집필을 위해 수년 동안 안도와 인근 섬들의 피해 내용을 조사하러 다니며 이야포 학살사건 목격자의 증언을 채록해 왔고, 낚시꾼으로 위장한 채 주민들과 친밀관계를 유지하면서 목격담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책 《두 소년》이 미군기에 의한 이야포 피난선 학살사건의 실체를 정교하게 드러내면서 한국전쟁을 재인식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 추천의 글
르포 작가 양영제는 끈질기게 책임을 묻는다. 여순사건의 심층 구조를 치밀하게 드러낸 전작 《여수역》 집필을 위해 수년 동안 안도와 인근 섬들의 피해 내용을 조사하러 다니며 이야포 학살사건 목격자의 증언을 채록해 왔고, 낚시꾼으로 위장한 채 주민들과 친밀관계를 유지하면서 목격담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 책 《두 소년》이 미군기에 의한 이야포 피난선 학살사건의 실체를 정교하게 드러내면서 한국전쟁을 재인식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 신기철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
★★★ 1950년 여수에서 일어난 이야포 사건은 누가, 왜 일으켰나
★★★ 70년이 넘도록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나라 현대사의 민간인 학살사건
★★★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 르포소설 《여수역》 양영제 작가의 신작
◎ 책 속에서
“저, 여쭤볼 게 있습니더.”
“뭔디 나한테 물어 볼꺼시 있다요.”
“그때 말입니더.”
“뱅기가 배 때렸을 때 말이요?”
“네, 그때 저의 어머니하고 동생 시신을 요 앞에 옮겨 놨드랬습니다.”
“오메! 그믄 그 송장이 엄마였소?”
“네….”
“오메… 그요.”
“혹시 그때 저의 어머니하고 동생 시신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십니까?”
“글세…… 그거시 하도 옛날 일이라서…….”
모친은 기억이 가뭇한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모로 돌려놓고 입을 열지 않았다. 전쟁 중에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작은 섬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이니 모친이 기억 못할 것도 없었다. 각인된 기억은 몸뚱이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 유상태는 모친의 기억을 돋치게 만들었다.
“엄니, 그때 마을 어른들이 죽은 피난민들 저그 서고지산에다 몽땅 묻었다고 안 했소?”
_46쪽
조종사들 사격실력은 대단히 뛰어났다. 쌕쌕이들이 화물선을 향해 줄을 서서 날아올 때에는 층을 만들어 계단을 이루었다. 맨 앞에서 날아온 쌕쌕이가 곤두박질 쳐서 기관포 불벼락을 쏟아붓고 솟구치면 그 다음 쌕쌕이들이 차례대로 꼬꾸라져 내려오면서 기관포를 퍼부었다. 신기에 가까운 비행기 사격 실력이었다.
피난화물선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피난민들이 쌕쌕이 기관포 불벼락을 피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봤자 배 안이고 독안에 든 쥐에 불과했다. 사람이 폭탄에 맞으면 허공으로 날아가는데, 기관포에 맞으니 아무 소리도 못내고 폭삭 꼬꾸라졌다.
_92쪽
“형, 저… 아줌마 죽었어?”
“누…구?”
“부산에서 우리한테 배탈 약 줬던 아줌마.”
“몰…라.”
(…) 갑판에는 기관포를 맞은 피난민들이 여기저기 포개져 쓰러져 있거나 뱃전에 몸뚱이가 걸쳐진 상태로 피를 바다에 흘리고 있었다. 대부분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죽어 있었다. 갑판에 쌓인 시신들 중에 아버지와 여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소년이 시신들을 헤집자 목숨이 붙어 있는 어떤 남자가 소년을 보고 입을 달싹거렸다. 물을 달라는 소리였다. 영등포에서 부산으로 피난 내려오는 기차에 혼자 탔던 반공단체 간부 아저씨였다.
_95쪽
부산으로 오긴 했으나 갈 곳이 없었다. 누나는 동대문아줌마에게 서울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영도다리 건너 봉래에 갔다 와보자고 말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을 줄 모를 일이었다. 누나와 동대문아줌마는 영도다리를 건너기 위해 여수뱃머리 뒤 조차장 철길을 따라 걸어갔다. 형제와 아줌마 딸은 부산항을 바라보며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형제가 여수뱃머리에 쭈그려 앉아 부산항에 쏟아져 들어오는 미군 전쟁물자를 하역하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줌마 딸이 형 홍춘송에게 물었다.
“오빠, 우리 엄마 언제 와?”
“좀 있으며 올거야.”
이번에는 홍춘송이 아줌마 딸에게 물었다.
“니네 식구 몇 명이었냐?”
“다섯 명.”
“그럼 세 명 죽었냐?”
“응.”
“누구 죽었냐?”
“아버지하고 오빠 둘.”
_173쪽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이동 통제는 한국 경찰이 맡았다. 정부의 명령대로 피난민들이 이동하다 미군기 폭격에 학살을 당했으니 국가와 미국은 학살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땅에 인권이 굳건하게 서고 왜 평화가 중요한 것인지 되새기게 되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_추천의 글,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