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여성들의 빛나는 서사”
한국 페미니즘 SF의 기수, 전혜진이 그리는 보드라운 퇴보와 멸망!
무례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전복시키는 우아한 다정함!
세계 최다 발행 SF 잡지 《科幻世界》 글로벌 공모전 수상작가 전혜진의 첫 SF 소설집!
수많은 작가들이 수많은 책을 쓴다.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20년 동안 기다려 왔으나 아무도 써주지 않은” 책들을 전혜진 작가는 근래 왕성하게 발표해 왔다. 한반도 전체가 거대한 ‘노 키즈 존’임을 통렬히 비판한 장편소설 《280일: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구픽, 2019)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임산부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가 하면, 30년간 읽어온 한국 SF 순정만화를 재조명한 에세이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구픽, 2020)를 발표하며 놓쳐서는 안 될 순정 SF 만화들을 기록했다.
그뿐인가, 옛 귀신 이야기들 속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성, 귀신이 되다》(현암사, 2021)와 불가능한 꿈을 실현한 29명의 여성 수학자 이야기 《우리가 수학을 사랑한 이유》(지상의 책, 2021)를 연달아 내놓았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여성 과학자들을 다룬 《우리 반 마리 퀴리》(리틀씨앤톡, 2020), 《우리 반 에이다》(리틀씨앤톡, 2021)까지 발표했다.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오롯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오롯함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소설집을 먼저 읽은 박문영 작가는 그 원동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얼떨떨할 정도로 성실하고 충만한 열두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손발에 근력이 생기는 것 같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려는 마음, 의로운 마음.” 그 싸움은 때로 <불법 개조 가이노이드 성기 절단 사건>에서처럼 과격해지기도 하지만, “작가가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썼다고’ 불평할 일은 없을 듯하다. 이 단편은 어떻게 봐도 충분히 ‘이성적으로 자제’한 결과물이니까. 당대 사회의 의식과 가치관에 전면적인 질문을 해본다는 면에서 SF의 혁명성과 전복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그 예시로 아무 흠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작가가 그리는 이 세계는 보드라운 퇴보와 멸망을 향해 간다. 그리고 그 세계를 전복하는 데 전혜진은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은 2007년 전혜진 작가가 《월하의 동사무소》로 데뷔한 이후, 첫 소설집 《홍등의 골목》(온우주, 2013) 수록작을 포함해 14년간 작가가 집필한 50여 편의 중단편 소설을 모두 검토하여 선별해 엮은 첫 ‘SF’ 소설집이다. ‘SF’를 강조하는 이유는, 작가가 근래 발표한 각종 픽션과 논픽션의 끝이자 시작에, 여기 모은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혜진은 무례하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현실을 철저히 파헤치고, 과거를 돌아보며 그 계보를 찾아 왔다. 그리고 현실에 머물지 않고 과감히 이를 전복하는 이야기들을 써 왔다. 그 이야기들이 SF인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여기 모은 전혜진의 SF들은 그 우아한 투쟁의 기록이자, 또 잘 벼른 칼날이다. 불합리한 성차별과 인습의 탯줄을 기어이 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