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가 영원히 살면 정말 유토피아가 펼쳐질까?”
김보영, 김창규, 배명훈 등을 배출한 과학기술창작문예
제3회 중편 부문 당선작가 배지훈의 데뷔 15년 만의 첫 장편소설!
한국 하드 SF의 계보를 잇는 전설의 귀환!
인간의 두뇌를 스캐닝해서 영원한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시대, 그 시대가 시작된 지 백수십 년이 지나고 그 기술, ‘클리니컬 이모털리티’를 이용해 육체를 바꿔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지구.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바뀐 것은 별로 없습니다. 사이보그 형사 아마벨은 잔혹한 시위진압 현장에서 이모털리티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소년과 소녀를 구하게 되지만, 치료 도중 소년이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그 배후에는 스캐닝으로 컴퓨터 속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누리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아마벨과 소녀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작품을 소개하는 것보다 먼저 ‘공모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래 한국 SF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데에는 단연코 수많은 작가들의 노력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겠으나, 그 숨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에는 그간 여러 공모전의 역할이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에야 <한국과학문학상> <문윤성 SF 문학상> <포스텍 SF 어워드> 등 SF만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은 물론, (정부 단체의 지원을 받아 무려 과학기술출판협회에서 주최하는 ‘공상 과학 소설’ 공모전까지 등장한 걸 보면) 다른 장르 소설 공모전의 경우에도 SF의 비중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만, 15년 전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지 싶습니다.
주관 및 후원의 문제로 ‘신춘문예’는커녕 ‘SF’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내세우지 못한 2004년의 첫 한국 창작 SF 공모전의 이름은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과 중편 부문을 나누어 진행된 이 공모전은 그나마 3년을 넘기지 못하고 2006년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짧다면 짧은 그 세 번의 공모전에서 배출된 작가들이 김보영, 김창규, 박성환, 배명훈, 정소연 등이며 그 작가들이 한국 SF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공모전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중 중편 부문만을 놓고 보면, 1회 수상작가가 김보영(수상작 <촉각의 경험>), 2회 김창규(수상작 <별상>)이었는데, 마지막 3회 중편 부문 수상작가가 바로 배지훈(수상작 <유니크>)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 《아마벨》은 <유니크>와 작가의 또 다른 중편 <인탱글>의 세계관을 잇는 배지훈 작가의 데뷔 15년 만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과학기술창작문예가 배출한 작가 중 정소연 작가가 첫 개인 소설집을 내는 데 11년, 김창규 작가가 12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조금 더 걸렸구나 하겠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도 과작(寡作)으로 소문난 배지훈 작가의 소설집을 묶는 데는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봄,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주제를 다룬 이 소설 《아마벨: 영원의 그물》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이 독보적인 작품을 독자들에게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니크>와 <인탱글>로 이어지는 세계가 ‘아마벨’이라는 새로운 주인공 경찰을 만나 비약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물론, 근래 한국 SF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황금기 고전 SF의 풍취까지 갖추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요.
작가의 말에서 밝힌 대로, 《아마벨: 영원의 그물》을 읽기 위해 세계관을 공유하는 중편 <유니크>나 <인탱글>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들이 궁금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유니크>는 얼마 전 앤솔러지 《나와 밍들의 세계》(황금가지, 2021)에 수록 출간되었고, <인탱글>은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으니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17351)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한국 SF 장에서 배지훈의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그간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나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미래사 시리즈> 등을 번역해 독자들에게 소개해왔는가 하면, <과학동아>에 <돌아간 사람들> 같은 걸작 단편을 발표하며 꾸준히 하드 SF의 명맥을 이어 왔습니다. 사실 작가는 우리 곁에 늘 있었죠. 그리고 어찌 보면 배지훈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기까지 너무 늦었다기보다, 한국 SF가 다양성을 통해 더 큰 전성기를 준비하는 지금이 이 작가를 만날 가장 적절한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벨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