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았던 자리가 채 녹기도 전에 이동 명령이다. 정말 어떻게 되어가는 판인지 알 수가 없다. 장난 같았다.
“아아니, 어떻게 된 거야!”
천막 안에 있던 십여 개의 입 중에서 아마 네다섯 입이 똑같은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같은 시각이었다. 고저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장단이 ―
“정말 어떻게 한다는 거라지?”
김 수병이다.
“이동한다는 거야! 그것도 몰라?”
“김 수병, 군대밥 좀더 먹어야겠군!”
박 수병이 하는 소리다. 언제나 또 무엇에나 체념이 빠른 박 수병이다. 그는 벌써 행장을 차리고 있었다.
“이 자식, 또 서둘러댄다! 박 수병! 너 혼자서 먼저 이동할 작정야? 서둘러대긴 ―”
“흥, 내가 맨 앞이거든!”
박 수병의 말에 실소들을 했다. 사실 박 수병은 맨 앞이다. 실소 끝이라 공허가 더 했다. 찬바람이 휘 돈다. 산악 지대라서만도 아니다.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었다. 화산에서 연닷새 이동이다. ㄷ산이 아무래도 무너진 것 같다. ㄷ산을 뺏긴다면 포위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었다.
“새끼들! 첨부터 우리한테 맡기라니까 억질 피우더니만!”
작전참모 윤 일조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철모를 내동댕이친다. 이 소대에서는 물론 중대에서도 군대밥을 가장 많이 먹은 고참이다. 작전 횟수도 그러려니와 예언이 또 잘 들어맞는다. 작전참모란 별명도 그래서 붙은 것이다.
ㄷ산을 그리스군이 맡는다는 이야기가 났을 때 작전참모는 길길이 뛰었었다. 우리 해병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악전을 많이 했다고 해서 작전에서는 그리스군을 내세웠었지만 두 번이나 실패를 했었다. 철의 삼각지의 ㅂ고지에서도 그랬고 ㅁ고지에서도 그랬었다. 그리스군으로 결정이 되자 작전참모는 중대장한테로 달려갔던 것이다.
“중대장님! 안 됩니다! ㄷ산 고지는 제가 잘 압니다. 그리스군한테 맡겼다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린 또 포위당합니다. 덩케르크 정도가 아닐 겝니다.”
중대장도 잘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중대장한테도 작전 지휘권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었다.
“작전참모한테는 어디까지나 참모의 권한밖에 주어지지 않았어! 알았나?”
“넷!”
“알았으면 물러가도 좋아!”
“넷!”
작전참모를 내어보내고 중대장도 주먹으로 가슴을 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