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날 밤

이무영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2년 05월 1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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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앉았던 자리가 채 녹기도 전에 이동 명령이다. 정말 어떻게 되어가는 판인지 알 수가 없다. 장난 같았다.
“아아니, 어떻게 된 거야!”
천막 안에 있던 십여 개의 입 중에서 아마 네다섯 입이 똑같은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같은 시각이었다. 고저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장단이 ―
“정말 어떻게 한다는 거라지?”
김 수병이다.
“이동한다는 거야! 그것도 몰라?”
“김 수병, 군대밥 좀더 먹어야겠군!”
박 수병이 하는 소리다. 언제나 또 무엇에나 체념이 빠른 박 수병이다. 그는 벌써 행장을 차리고 있었다.
“이 자식, 또 서둘러댄다! 박 수병! 너 혼자서 먼저 이동할 작정야? 서둘러대긴 ―”
“흥, 내가 맨 앞이거든!”
박 수병의 말에 실소들을 했다. 사실 박 수병은 맨 앞이다. 실소 끝이라 공허가 더 했다. 찬바람이 휘 돈다. 산악 지대라서만도 아니다.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었다. 화산에서 연닷새 이동이다. ㄷ산이 아무래도 무너진 것 같다. ㄷ산을 뺏긴다면 포위될 위험성이 다분히 있었다.
“새끼들! 첨부터 우리한테 맡기라니까 억질 피우더니만!”
작전참모 윤 일조가 밖에서 들어오면서 철모를 내동댕이친다. 이 소대에서는 물론 중대에서도 군대밥을 가장 많이 먹은 고참이다. 작전 횟수도 그러려니와 예언이 또 잘 들어맞는다. 작전참모란 별명도 그래서 붙은 것이다.
ㄷ산을 그리스군이 맡는다는 이야기가 났을 때 작전참모는 길길이 뛰었었다. 우리 해병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악전을 많이 했다고 해서 작전에서는 그리스군을 내세웠었지만 두 번이나 실패를 했었다. 철의 삼각지의 ㅂ고지에서도 그랬고 ㅁ고지에서도 그랬었다. 그리스군으로 결정이 되자 작전참모는 중대장한테로 달려갔던 것이다.
“중대장님! 안 됩니다! ㄷ산 고지는 제가 잘 압니다. 그리스군한테 맡겼다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린 또 포위당합니다. 덩케르크 정도가 아닐 겝니다.”
중대장도 잘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중대장한테도 작전 지휘권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었다.
“작전참모한테는 어디까지나 참모의 권한밖에 주어지지 않았어! 알았나?”
“넷!”
“알았으면 물러가도 좋아!”
“넷!”
작전참모를 내어보내고 중대장도 주먹으로 가슴을 쳤었다.

저자소개

일제강점기 「제1과 제1장」·「흙의 노예」 등을 저술한 소설가. 본명은 이갑룔이고 이무영은 필명이다.

목차소개

작가 소개
그 전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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