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장 / 지휘에 관한 짧은 역사
2장 / 지휘 언어와 테크닉
3장 / 관현악 스코어를 읽는 법
4장 / 지휘자가 되는 길
5장 / 마에스트로의 페르소나
6장 / 관계들
음악과의 관계
음악가와의 관계
청중과의 관계
평론가와의 관계
소유주 및 경영진과의 관계
7장 / 누가 무대의 주도권을 쥐는가?
8장 / 떠돌이 지휘자의 일상
9장 / 녹음과 공연
10장 / 지휘 예술의 신비
주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지휘의 일, 지휘의 신비
지휘자를 가리키는 말은 다양하다. 이탈리아인들은 ‘대가’ ‘거장’을 뜻하는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때론 ‘오케스트라의 수장’을 뜻하는 카포 도케스트라(capo d’orchestra)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셰프(chef)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그러나 이들 단어로는, 들리지만 보이진 않는 힘을 나직이 돕는 지휘자 노릇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마우체리는 지휘자를 뜻하는 영단어 컨덕터(conductor)가 본래 ‘전도체’를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휘자의 일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작곡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소리를 생산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에 힘입어 그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본문 168~169쪽)
정말로 그렇다. 지휘자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악보를 연구하고 무대 위에 홀로 서서 악단을 끌고 가는 고독한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음악을 둘러싼 모든 것, 모든 사람, 모든 에너지와 관계를 맺으며 이를 조율하는 리더이기도 하다. 지휘는 혼자 하는 일인 동시에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협업이며, 지휘자 고유의 개성을 드러내는 작업인 동시에 지휘자 자신을 내려놓은 채 작곡가의 의도와 여러 악기 및 목소리가 빚어내는 화음을 청중에게 전하는 작업이다. 이토록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라니. 하지만 무대 위에서든 녹음실에서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또한 지휘자이기에, 마우체리는 ‘신비’ 혹은 ‘마법’이라는 말로 자신의 직업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으리라.(479쪽)
물론 지휘에도 일종의 기술이 있다. 총보를 읽는 법, 바통을 쓰는 법(물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처럼 바통 없이 맨손으로 지휘하는 이들도 있다), 동작 언어를 사용하는 법(가령 레너드 번스타인은 유명한 ‘뜀꾼’이었다) 등 배워서 터득할 수 있는 기법이 존재한다. 이 책 전반부(1~3장) 역시 여러 지휘자의 사례를 통해 그런 테크닉에 관한 유용한 팁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지휘는 테크닉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결국엔 테크닉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오토 클렘퍼러와 제임스 러바인은 몸동작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휠체어에 앉은 채로도 주요 작품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휘 박사 학위를 따고 바통 테크닉을 마스터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로한 지휘자는 필경 얼마간의 청력 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소리를 주무르고 균형을 유지하는 그들의 통찰력은 해가 가면 갈수록 오직 날카로워지기만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휘는 운동으로 치자면 마라톤인 까닭이다.”(480쪽)
이 책은 그런 불가해한 지점에 관한 경험과 일화를, 그 순간이 어떻게 빚어졌는가를 풍부하고도 섬세하게 들려준다. 어쩌면 바로 그 지점이 위대한 지휘자들을 서로 구별되게 해주고, 마우체리와 같은 인물을 지휘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진동하는
직업으로서의 지휘자
이렇듯 신비와 마법으로 가득한 것이 지휘의 일이라지만, ‘생계 수단’이라는 면에서 놓고 보면 지휘도 일종의 비즈니스다. 지휘자는 어쨌든 부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오케스트라 경영진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또 앞서 수많은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지휘자의 책무라고 했는데, 그 관계 속에서 주도권 싸움이 빠질 수 없고 성악가라든지 연출자와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그러니 이 분야에서도 ‘이름난 지휘자가 곧 실력이 출중한 지휘자’라는 등식은 성립하기 어렵다. 사실 그 ‘실력’이라는 것의 기준도 저마다 다를 테고 말이다.
이런 생활인으로서 지휘자의 애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유럽에서 활동하는 객원 지휘자다. 무대 위에 오를 때야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들어서지만 실상은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도는 봇짐장수에 가까워서, 트렁크 가방에는 무대의상과 평상복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동 연필깎이까지 짐이 한가득이다. 게다가 악보는 종이요, 종이 뭉치는 또 얼마나 무거운가.(397쪽) 그렇게 짐가방을 이고 지고 호텔방에 들어서면 종일 틀어박혀 악보 연구에 매진한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국제전화 요금도 비싸니 전화기는 쳐다도 안 보다가 책을 뒤적이던 중 외로움을 끌어안고 잠에 든다.(419쪽)
그러니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지휘자 이미지는 지휘자라는 직업의 극히 작은 일면일 뿐이다. 마우체리는 “재미 보십시오(Have fun)”라는 인사말을 상당히 싫어한다는데, 지휘가 기쁨을 주는 일인 것은 맞지만 그 기쁨에 ‘재미’는 없기 때문이란다.(392쪽) 경력과 명성을 쌓아 음악감독 직책을 맡게 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화려한 삶에 좀 더 가까워지기도 하나(“집으로 돌아오는 길, 점보제트기의 3A석에 앉아 미모사 칵테일을 마시며 벽에 발을 올려놓고 맛있는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422쪽), 일이 있으면 있어서 괴롭고 없으면 없어서 괴로운 삶은 여전하다.
마우체리는 말한다. “따라서 무릇 지휘자란, 막대한 도전과 주변의 기대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할 수 있으니 실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 하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4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