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한 주인공 ‘현도현’, 그 세대의 연대기를 소설 한 편에 녹여 보려 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소설적 허구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성취와 상실, 사랑과 자유를 꿈꾸는 영혼의 날갯짓은 작가의 분신과 같습니다. 무엇 하나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소시민이, 허름한 선술집에서 주절주절 늘어놓는 넋두리라고 할까요.- 작가의 말에서
어두운 밤, 달빛이 꽃잎에 스며들어 통정하듯, 사람이 사람에게 스며들고 부대낄 수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삭막한 것인가. 막상 지구별에 인간만큼 고약한 바이러스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건가. 그래서 모두 부끄러워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건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이동제한이 풀리자 그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본문에서
계절은 변화무쌍했다. 어느 날은 찬란한 빛이었고, 구름이었고, 천둥 번개 몰아치는 폭풍우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에 젖은 몸을 말려 주는 햇살 때문에, 땀에 젖은 얼굴을 식혀 주는 가을바람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따뜻한 미소가 시린 겨울을 견디게 했어. 별일 없이 살아낸 하루, 그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건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어. 이렇게 역병이 창궐하는 세상을 살아 보니 더 그래. 사계절은 반복되었고, 우리는 나이테를 늘리는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서 뻗어 갔지.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숲이었던 거야.-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