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일시 휴정이고 심의에 들어감.”
이 재판장의 음성 여하로써 나는 그날 판결을 대개 예측할 수 있었다. 변호를 많이 해온 경험에서다. 더욱이 R 재판장의 재판에는 벌써 다섯 번째나 변호를 맡았었고, 나의 예측한 형기에서 벗어나본 예가 별로 없었다. 특히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긴 변론을 호감으로서 들어주는 것처럼 내게는 느끼어졌었고, 다른 심판관들의 태도도 대체로 오발로 인한 사건에 3년을 구형한 검찰관에 도전한 나의 변론에 많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졌었다.
‘최고 1년? 1년은 무릴까? 1년 반?’
오늘 공기로 보아 최고 1년 반 이상은 절대로 넘어갈 리 없다고 나는 자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1년쯤으로 떨어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무기 취급에 대해서는 유달리 엄격한 P 대위가 검찰관이면서도 3년밖에 구형을 하지 않았다는 그 자체가, 비록 전우를 죽이기는 했다지마는 불가항력인 오발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던 것이다. 전번 오발 사건 때는 불구자는 되었을 망정 죽기까지는 않았는데도 5년을 구형한 P 대위였었다.
“군인한테는 무기가 즉 생명인데 생명인 무기를 소홀히하는 놈은 제 생명의 가치를 인정치 않는 놈이니까!”
이것이 평소부터의 P 대위의 지론이었다. 국가를 수호할 군인으로서 제 생명의 가치를 인정치 않는 군인이라면 동정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놈들한테 무기를 맡겨두었다간 오발로 전우를 상하는 것쯤은 약과고, 적한테 빼앗길 위험성도 있거든… 그런 놈들은 보촐 세워놓으면 총대 메고 잘 놈들이지…”
이 P 대위가 검찰관이란 말에 변호인인 나는 요새 말쪼로 떨었었다.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사건에도 8년을 구형한 P 대위니 오발이라고는 하지마는 피해자가 생명까지 잃었고 보니 하불하 10년이요 어쩌면 더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사건을 맡은 그 당시에는 단념하다시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서 피해자와 피고는 중학 일년급부터 동창일 뿐만 아니라, 입대도 같은 날이요 가장 친한 동무였다는 것이요, 그날 부서의 단체 야유회에서 따로이 단둘이서만 노루를 쏘러 가면서도 손을 맞잡고 올라가는 것을 여럿이 다 보았다는 것이다.
“저 둘은 참 사이가 좋아. 바늘에 실이라니까.”
그날도 누군지가 이런 소리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피고 일조 박진학에게 또 한 가지 유리한 증인이 있었다. 야유회에서 대원들과 함께 구경도 하고 심부름도 하다가 노루잡이 간다는 바람에 뒤따라 산에 올라갔던 두 소년이다. 기실 이 사건을 피고보다도 먼저 내려와서 보고해준 것도 이 소년이었었다. 소년이라지만 한 소년은 열여덟이나 된 아이였다.
그들의 보고는 피고와 피해자는 한 간통쯤 떨어져서 병진하며 산비탈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약 오백 미터 앞에 노루 두 마리가 나타났다고 한다. 노루는 이쪽으로 넘어오는 길이었다. 막 고개를 넘어서서 이쪽에 사람이 있는 것을 오두마니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루다!…‘
피고인지 피해자인지 이렇게 소리를 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