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인가?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조선희의 소설 『거기, 여우 발자국』. <고리골>, <모던 팥쥐전>에서 특유의 상상력으로 전래 동화를 새롭게 해석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낯선 구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책 속에 있는 가상의 인물이나 공간을 현실로 불러내는 기이한 목소리의 여자 우필. 실체를 환상으로, 환상을 실체로 보는 남자 태주. 우필은 그로 인해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들지도 못했지만 태주는 그저 자신에게 착각이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고만 생각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엉키고 교차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서로의 삶에 파고드는데….
북소믈리에 한마디!
이 소설에서 현실과 허구의 시간과 공간은 서로 얽히며 어느 순간부터는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우필의 세계와 태주의 세계에서 그들이 각자 살아가는 세상이 무조건적으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과 관계를 맺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여야만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실존적 함정, 이야기를 일으키려는 말의 의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외로움 등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동화 <눈의 여왕>, 영화 <큐브> 등에서 모티브를 차용하여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들에 대한 추측의 여지를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