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2년 10월 06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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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삼십이립(三十而立)’─의 옛사람의 말을 생각할수록에 지금의 신세가 억울한데 더한층 안타까운 것은 ‘사십이(四十而)─’ 무엇이던가를 잊어버렸습니다. 삼십에 서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십에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의 옛사람의 가르침을 어느결엔지 까먹어 버린 것이 삼십을 넘어 사십을 바라보는 요사의 세운의 마음을 한층 죄었다.
행차 칼이나 목에 맨 듯 괴로운 마음으로 사십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포도를 걸어갈 때 정해 놓고 가게 유리창에 어리우는 자기의 꼴이 눈에 뜨인다.
그 자기의 꼴에 한눈을 파게 된 것이 또 한 가지 요사이의 기괴한 버릇이다. 사람의 모양을 호들갑스럽게 망칙하게 비춰내는 것이 거리의 유리창의 심술이기는 하나 그 비뚤어진 속으로도 후락한 육체의 꼴이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리의 목욕탕에 들어가 저울 위에 오를 때 아무리 발을 굴러 보아도 바늘이 십칠 관을 더 가리키지는 않았다. 이십 관을 자랑하던 위장부의 늠름하던 체중이 반년 동안의 비참한 몰락인 것이다. 얼굴에 온통 허구렁이 진 것은 오히려 나이의 턱이라고 하더라도 비대하던 몸집이 거의 반쪽으로 축난 것은 유리 속으로도 보기 딱했다. 그 헌거롭던 자태가 이제는 하릴없는 등신의 행진이었다.
지난 반년 동안 술이 과했고 몸가짐이 허탕했던 까닭으로밖에는 돌릴 수 없는 것이 그 이상의 이유를 세운은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했대야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같이 또박또박 이치를 따지지 못하나 무거운 울화만은 거리의 누구에게도 밑지지 않게 가슴속에 간직한 그였다.
아침에 집을 나가면 동무들과 휩쓸려 술과 해 동무를 하다가는 밤이 패야 돌아간다. 소리패와 좌석을 같이하고 진종일을 지낸다고 해도 별반 신통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농을 걸고 북새를 놓고 하는 동안에는 도리어 사람이 허름해만 지고 처신이 떨어져 갈 뿐이었으나 그러나 집안에 있을 때의 지옥의 괴롬을 생각하면 그래도 실속은 없으나마 그 긴치 않은 동무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된다.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길을 잡아보겠다고 몇 번이나 두문불출 집안에 들어박혀 보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애를 썼을 뿐이지 그 갑갑한 공기 속에서는 단 반날을 진정하고 앉아서 신문 한 장 편히 읽을 수는 없었다. 생활의 기쁨이라고는 없는 어둡고 무거운 유풍 속에서 아내는 허구한 날 황고집을 피우면서 흥이야 항이야 쓸데없는 일에까지 입살이 세다. 생각하면 묵은 대의 희생을 당한 결혼부터가 불행한 것이었다. 남편된 도리를 다하지도 못했거니와 아내로서의 부드러운 정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남편의 밖에서의 처신이 허랑하다고 활이야 살이야 문책이 심하면 끝에 자진해 버리겠다고 약사발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뺏어서 던진 약사발이 공교롭게도 뜰 앞 향나무를 맞히면서 뿌리 위에 쏟아져서 독한 잿물 기운에 잎이 타고 가지가 시들기 시작했다. 선친이 돌아가기 전에 손수 심어 놓은 기념수였다. 경망스럽게도 치명의 상처를 입은 향나무를 바라만 보아도 심화가 터 올라와서 그 후부터는 더욱 집이 싫어졌다. 집이 아니라 굴이요, 잠깐 잠자리를 빌러 들어갈 뿐인 게 껍질인 셈이었다. 잠만 깨면 작정 없이 거리로 나와 계획도 지향도 없어 발 가는 대로 뜻을 맡겼다.
자연 삼십의 교훈이 마음속에 절실히 떠오르게 되었고 유리창에 어리우는 메마른 꼴이 눈에 띠이게도 된 것이다. 그러나 발 맥이 노곤한 판에 단골찻집에 들어가 이것도 그맘때만 되면 번김없이 와 앉아 있는 진을 만나 마주앉게 되면 세운은 무시근하게도 교훈도 자기 꼴도 흐리마리 잊어버리고 만다. 긴치 않다고는 해도 그 바람에 아직도 동무만은 버리지 않고 좋든 궂든 사귀어 오는 것이다.

저자소개

소설가(1907~1942). 호는 가산(可山). 1928년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이후, 초기에는 경향 문학 작품을 발표하다가, 점차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한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에 <메밀꽃 필 무렵>, <화분(花粉)>, <벽공무한(碧空無限)> 따위가 있다.

목차소개

작가 소개
막(幕)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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