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호(尹光浩)는 동경 K대학 경제과 2학년급의 학생이라. 금년 9월에 학교에서 주는 특대장(特待狀)을 받아가지고 춤을 추다시피 기뻐하였다. 각 신문에 그의 사진이 나고 그의 약력과 찬사도 났다. 유학생간에서도 그가 유학생의 명예(名譽)를 높게 하였다 하여 진정으로 그를 칭찬하고 사랑하였다.
본국에 있는 그의 모친도 특대생이 무엇인지는 모르건마는 아마 대과급제 같은 것이어니 하고 기뻐하였다. 윤광호는 더욱 공부에 열심할 생각이 나고 학교를 졸업하거든 환국(還國)하지 아니하고, 3·4년간 동경에서 연구하여 조선인으로 최초의 박사의 학위를 취하려고 한다. 그는 동기(冬期)방학 중에도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였다. 친구들이
"좀 휴식을 하시오. 너무 공부를 하여서 건강을 해하면 어쩌오."
하고 친절하게 권고한다. 과연 광호의 얼굴은 근래에 현저하게 수척하였다. 자기도 거울을 대하면 이런 줄은 아나 그는 도리어 열심한 공부로 해쓱하여진 용모를 영광으로 알고 혼자 빙긋이 웃었다. 그는 전 유학생 계에서 이러한 칭찬을 받을 때에는 13, 4년 전의 과서를 회상치 아니치 못한다. 그때에 자기는 부친을 여의고 모친은 재가하고 혈혈(孑孑)한 독신으로 혹은 일본 집에서 사환 노릇을 하며 혹은 국숫집에서 멈살이를 하였다. 그때에 자기의 운명은 비참한 무의무가(無依無家)한 하급 노동자밖에 될 것이 없었다. 그냥 있었더면 24세 되는 금일에는 아마 어느 국숫집 윗간에서 때묻은 저고리를 거꾸로 덮고 허리를 꼬부리고 추운 꿈을 꾸었을 것이라. 그러나 지금은 동경 일류대학의 학생이 되고 비복(婢僕)이 승명(承命)하는 하숙의 깨끗한 방에서 부귀가(富貴家)의 서방님이나 다름이 없는 고상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겸하여 전도에는 양양한 희망이 있다. 그는 동경 유학생 중에 최고급으로 진보된 학생 중의 일인(一人)이라, 수년이 못하여 조선 최고급의 인사되기는 지극히 용이한 일이라. 이렇게 광호가 자기의 소년시대와 현 생활을 비교할 때에는 희열의 미소를 금치 못할 것은 물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