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의 만복

차상찬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3년 02월 03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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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때는 바로 이조 숙종시대(肅宗時代)였다. 전라남도 광주땅(全南光州郡)에는 고유(高庾)라 하는 늙은 총각이 있었으니 그는 본래 선조시대(宣祖時代)에 문장으로 또는 충신으로 유명하던 고제봉경명선생(高霽峰敬命先生)의 후예로 대대 문벌도 상당하였고 생활도 또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지만은 그가 열한살 안팎될 시절에 와서는 가운(家運)이 아주 기울어지게 되어 그의 부친이 남의 빚 보증을 하였던 관계로 가산을 전부 탕진하고 최후에는 그 부모까지 내외가 세상을 떠나게 되니 홀로 남아 있는 고아고유(孤兒高庾)는 사고무친 몸을 의지 할 곳이 없어 동네 사람의 집 신세를 지며 동쪽에 가서 밥 한끼 얻어 먹고 서쪽에 가서 잠 한잠을 이루고 하면서 구걸을 하다싶이 하게 되니 아무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
나이 근 이십이 되도록 글 한자를 알지 못하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동네에서 몇해 동안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하루는 우연히 생각하기를
『남자가 세상에 나서 남처럼 공부도 못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바에야 차라리 남모르는 타향에 가서 하는 것이 옳지, 창피하게 제 고장에서 할 수 있겠나.』
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자기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더벅머리 쇠코 잠방이에다 헌옷 보따리를 둘둘 말아서 어깨에다 둘러메고 정든 산천을 이별하고 낯설고 눈설은 타도 타향을 향하여 갔었다.
먼저 경상남도 몇 고을을 거쳐서 다시 경상북도 지방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도중에서 마침 어떤 사람을 만나 같이 간다는 것이 바로 고령땅(高靈) 어떤 농촌이었다.
그는 평생에 배운 것이란 농사 짓는 일밖에 없는 까닭에 그 곳에 가서도 역시 김첨지(金僉知)란 늙은 영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비록 잠시 집안 운이 불길하여 집안이 다 망하고 자기 나이가 스물이 되도록 글 한자 배우지 못하고 타향에 와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지만 원래에 혈통이 있고 천품을 잘 타고난 까닭에 얼굴도 남 보기에 그리 밉지 않게 잘 생기고 마음이 퍽 온순하고도 부지런하여 주인이 무슨 일을 시키면 아무 군말도 없이 잘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항상 자진하여 아무 일이나 순서 있게 잘하고 또 성질이 결벽(潔癖)이 있어서 날마다 아침이면 일찌기 일어나서 자기 집 뜰을 깨끗하게 소제하는 이외에 또 동네 여자들이 물길러 다니는 우물길까지 깨끗하게 소제하여 그야말로 길에 밥알이 하나 떨어져도 그대로 집어 먹을만 하게 하니 그에 대한 칭찬은 그집 주인뿐 아니라 동네 여자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비록 글자는 배우지 못하였을망정 언어 행동의 여러 가지 일이 모두 범절 있게 하니 동리에 사는 같은 농군끼리도 모두 그를 존경하여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따라서 동네의 일반 남녀노소가 모두 고도령이란 별호를 만들어서 그의 대명사로 불러 쓰게 되었다.

저자소개

일제강점기 「경주회고」, 「남한산성」, 「관동잡영」 등을 저술한 시인. 수필가, 언론인.

목차소개

저자에 대해
노총각의 만복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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