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결 같은 금강(錦江)이 구비구비 감돌아 흐르고 수려한 봉황산(鳳凰山)이 병풍 같이 둘러싼 충청남도(忠淸南道)의 명도(名都) 공주(公州)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삼백 수십년 전 선조(宣祖) 말년 경에 일개 여장부가 고고(呱呱)의 소리를 치고 탄생하였으니 그는 그곳 부호(富豪)로 유명한 이방(吏房) 정모(鄭某)의 귀동딸(貴童女)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질이 비범(非凡)하고 문필(文筆)이 능란하고 지감(知鑑)이 있었는데 검하여 인물(人物)이 또한 어여쁘게 잘 생기어 부모(父母)가 특별(特別)히 애지중지(愛之重之)할 뿐만 아니라 그 동리(洞里) 사람들까지 모두가 그를 칭찬하여 방년이 이팔에 이르니 마치 꽃향기를 맡은 벌떼들 모양으로 이곳 저곳에서 청혼이 빗발치듯이 들어왔었다.
그 청혼(請婚)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네와 지벌이 같고 돈이 많은 아전의 아들도 있고, 가풍(家風)이 좋고 인물이 미려(美麗)한 촌 양반의 아들들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군수(郡守)의 아들이 양첩 혹은 후취로 장가들겠다는 청까지 있었다.
부모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어떠한 곳이든지 그중에서 제일 좋은 곳을 선택하여 시집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 딸은 무슨 까닭인지 청혼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족족 모두 깨끗이 거절해 버리는 것이었다.
어떠한 양반이고 부자이고 미남자이고 간에 전부를 거절하고 자기 부모에게 말하기를
『저는 언제든지 제 눈으로 보아서 저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아니면 비록 청춘홍안(靑春紅顔)이 반백발이 될지라도 결코 시집을 가지 않을 결심이옵니다.』
하고 우겨대니 부모들도 어찌하지 못하고 다만 딸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어느해 가을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