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말해야 정확하게 말한 것 같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다
정확하지 않다고까지 말해야 더 정확한 것 같다”
가만히 역동적으로 ‘많이 보는’ 사람의
살아 있음에 대한 민감한 포착
제64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지정석」 수록
2012년 동아일보로 등단해 2017년 첫 시집 『온』을 출간한 뒤 가장 뛰어난 첫 시집에 수여하는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하고 2019년에는 현대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기대와 신뢰를 한몸에 받아온 안미옥 시인, 그의 세번째 시집을 문학동네시인선 187번으로 출간한다. 소시집 『힌트 없음』 이후 3년 만이다. “언어가 닿을 수 없었던 막연한 느낌들이 가시적인 실체로 다가오고 몸속에서 운동하고 있는 알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김기택 시인), “자신의 삶을 오래 매만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오래 바라보고 삭힌 마음이 간단하고 명징한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점은 ‘안미옥스럽다’고 할 만했다”(장석남 시인)는 평을 받으며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지정석」 외 6편의 시와 “이 시는 새로운 사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을 받으며 선정된 시소 프로젝트(자음과모음) ‘2022 봄의 시’ 「사운드북」 등 총 46편의 시가 3부에 나뉘어 실려 있다.
시집 제목인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는 마지막 시 「사운드북」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하다. 제목을 거쳐 시집 안으로 들어가며 자연스레 품게 되는 질문─누가 무엇을 왜 보고 있나, ‘많이’는 양인가 종류인가 등─과 시집을 다 통과한 뒤 같은 문장을 다시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심적 변화를 섬세히 들여다보길 기대한다. 더불어 ‘보다’라는 동사가 감각과 인지와 사유를 총동원하게 되는 가만히 역동적인 것이며, 안미옥 시세계와 특히 잘 어울린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안미옥 시의 화자가 이번 시집에서 특히 많이 보는 것은 ‘집’이다. 출간을 앞두고 편집자와 주고받은 짧은 인터뷰에서 시인은 ‘집’이 장소이자 정서이자 시간인 것 같다고, 나아가 생활이자 관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목과 부제에 ‘집’이 들어간 두 편의 시 「하우스」와 「축─하우스 2」를 살펴보자. 「하우스」의 화자는 이사를 위해 집을 보러 다니고 있는 듯하다. 낯선 이의 집에 들어가 조도를 살피고 변기 물을 내려보는 이상한 일이 가능하다. 1978년에 지어진 집에는 이후의 시간과 햇빛과 먼지가 쌓여 있다.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집을 보는 사람은 집을 보여주는 사람”, 그는 “제가 집에 있어요”라며 미리 연락을 달라고 한다. 집을 지키는 사람과 살피러 온 사람 모두 ‘보는 사람’이며 그 집은 누군가 살아온 곳이자 누군가 찾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집’-‘보는 사람’의 관계는 반복되고 순환할 것이다. 「축─하우스 2」도 마찬가지다. ‘보러 간 집’ 테이블 위 “정갈하게 쌓아놓은 키위”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다. 벽지가 바래고 짐이 쌓여 있다. “생활이 있어서// 자연스러워진” 일들. 그러므로 창 너머 커다란 나무를 보는 사람이 “여기 사는 사람”인지 “나”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것 또한 이상하지 않다.
‘생활’에는 ‘마음’이 쓰인다. 그 마음에 대해 쓴 시의 제목이 ‘주택 수리’인 것이 인상적이다. 물이 새고 창틀이 찌그러져 있으며 잠깐 기댔는데 내려앉는 싱크대를 가진 집은 자꾸만 마음을 쓰게 하고, 화자는 “이제 사로잡혀 있지 말자”고 다짐한다. 갓 태어난 아기에겐 마음이 없으며 생후 한 달이 지나서야 생기는 게 마음이라고, 그러므로 마음이 없이도 사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해본다. “구체를 경험한다는 것/ 그럴듯한 것과 멀어지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