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安平大君)은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셋째 아들이오, 별호(別號)를 비해당(匪懈堂)이라 하였다.
용모 풍채가 일세를 압도함은 물론이고 풍류 호방한 중에도 명필(名筆)로 세상에 들리어 당시에 서로 교류하는 이가 일대 명사아닌 이가 없었다.
때마침 평양(平壤)에 기생(妓生) 하나가 있는데 선연한 태도라든가 아리따운 얼굴이 물색으로 제일 치는 평양에서 둘도 없을만 하고 겸하여 가곡(歌曲)에 능난한 것이며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뛰어나는 재주가 있어 뭇 남자가 한번만 대하면 모두 실혼락백(失魂落魄)을 할만 하였다.
천성이 너무 교만하여 어떤 남자에게든지 몸을 허락하지 않으며 감사 병사수령(守令)들의 권세(權勢)로도 그 기생의 잡은바 뜻을 빼앗지를 못하였다.
그때에 안평대군이 그 기생의 이름을 듣고 한번 평양에 가서 연광정(練光亭) 구경도 하고 부벽루(浮碧樓)놀이도 하여 우리나라 제일 강산의 구경을 샅샅히 하고자 별렀으니, 그것은 평양 구경 보다도 그 핑계로 그 기생을 보고자 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한 탓이다.
하루는 문밖에 최서방(崔[최])이란 사람이 와 명함을 드리고 뵈옵기를 청하였다.
안평대군은 들어오라 하여 서로 상면하니 나이 스물이 될락 말락하고 용모도 단아하며 행동도 얌전하여 여러모로 뜯어 보아도 참 깎은 선비였다.
안평대군은 매우 기특히 여기어 서로 수작이 오고 가게 되었다.
최서방은
『대감의 필명(筆名)을 우뢰같이 들은지 오래오니 한번 뵈옵고저 합니다.』
고 청한다.
안평대군은 청지기를 시켜 문갑속에 두었던 간지두루마리 한 축을 내다놓고 글씨를 몇줄을 쓴 후
『그대가 이미 글씨의 잘되고 못됨을 아는 모양이니 한번 써보게.』
하고 최서방에게 말했다.
『잘 쓰지를 못합니다.』
하고 몇줄을 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