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서 서선으로 통하는 큰 길이 송도에 한 십리? 채 못간 곳에 불과 십여 호박에 안되는 조고마한 동리가 길에서 맛 근너 보이엿다. 이 동리에서 조곰 떨어저 산 속으로 무성한 소나무 숩에 싸이여 아담하게 지은 기와집 한 채와 사당 한 채가 덩금하게 잇섯다.
어느 여름날 무더운 저녁에 이 집 주인이 부채를 들고 마당 우를 어정어정하고 잇느란이 늙은 중 하나가 이 기와집 잇는 데로 집팽이에 몸을 의지하여 터벅터벅 걸어 들어왓다.
“지나가는 중이온데 날이 저물어 하로밤 자고 갈가 하고 차저 들어왓읍니다.”
하고 주인한테 공손히 절을 하엿다.
“이러한 산골을 차저주시니 고맙습니다. 저 사랑으로 들어갑시다.”
주인은 조금도 거릿김업시 늙은 중을 인도하여 사랑으로 들어갓다.
“아 - 참 아즉 저녁을 안 자섯게구먼요.”
주인은 늙은 중과 인사를 맛치고 저녁을 차려내 올여고 안으로 들어갓다.
“사랑에 손이 하나 왓스니 저녁 한 상만 차려 보내시요.”
부인은 방문을 열고
“? 어? 손님이 게시우 ─.”
가만히 그러나 반갑지 안흔 목소리로 대답하엿다.
“지나가는 중이라우. 날이 저물어 하로밤만 자고 간다오.”
주인이 이러케 대답하고 사랑으로 가랴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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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일제강점기 「홍경래전」, 「소설 빵떡」, 「노신선생부인 경성여사」 등을 저술한 소설가.
충북 괴산 출신으로 청주고보 졸업뒤 경성제대 중문과를 졸업(1940년)하고 휘문고 교사를 거쳐 서울대 중문과 조교수(1946~49)를 지냈다. 해방 직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문학동맹’에서 활동했다. 학내 이념 대립 와중에 좌익으로 규정돼 교수직을 그만두었다가 인공치하에서 대학에 복귀해 몇달간 ‘반짝 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