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권경완(權景完). 권환(權煥)은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하였으며, 1927년에 카프 도쿄 지부에 입단하여 김남천, 안막, 임화 등과 함께 일본에서 프로문학 운동을 했다. 귀국 후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1930년 무렵 「무산예술운동의 별고와 장래의 전개책」 「실천적 객관주의 문학으로」 등 다수의 평론을 발표했다. 이때 ‘예술대중화 논쟁’에 참여하였으며, 카프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어 김기진과 박영희 등 카프의 창립 단원들을 축출하고 임화 등과 함께 카프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이끌어 볼셰비키 예술운동의 주도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권환은 소설보다는 시와 평론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목화와 콩」은 많지 않은 그의 소설 작품 중 1931년 7월 《조선일보》에 연재된 단편이자 농민소설로, 농민을 각성시켜 소작쟁의 등 계급투쟁을 일으킨다는 볼셰비키 창작방법론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며 식민지 농업정책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담고 있다.
권환은 1931년과 1934년의 카프 검거 사건 때 모두 검거되었다 석방된 이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기자, 경성제국대학 부속 도서관 사서를 전전했다. 광복 후 이기영, 윤기정 등과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결성하였고, 이듬해 조선문학건설본부와 통합된 조선문학가동맹 발족을 주도해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47년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불법화되어 당 지도부와 함께 임화 등 카프 문인이 대거 월북할 당시 그는 마산으로 낙향하였으며, 1954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