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해석전문가

부희령 | 교유서가 | 2023년 04월 1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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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지겨운 윤회의 사슬을 끊으려고 히말라야로 왔대요.”
“뒤집어진 보트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해.”

구도의 길에서 건져 올린 조각들을 모아
다른 빛깔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부희령 작가의 11년 만의 소설집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작가 부희령이 11년 만에 소설집을 묶었다.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어떤 갠 날」로 등단한 저자는 80여 편의 번역서를 내면서 틈틈이 자신 안의 멍울을 끌어올려 풀어내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2012년에 발표한 『꽃』 이후 두번째 작품집으로, 인도와 네팔 등지에 체류하며 명상과 불교를 공부한 작가 부희령이 구도의 길에서 건져 올린 조각들을 모아 ‘이별(떠남)’을 통한 다른 빛깔의 자유를 전한다. 부희령의 자유가 우리가 보아왔던 빛깔과 다른 이유는 “지금 여기와는 많이 다른 세계를 목적지로 설정하고자 한다”(「작가의 말」)는 작가의 숙념 때문이리라. 얽힌 관계(폭력) 뒤 이별(떠남), 그뒤 다시 반복되는 관계(폭력)와 다시 이별. 이 운명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해법은 ‘이별’ 뒤에 남는 것이 절망(고통)이 아닌 ‘자유’라는 자각이다. 『데미안』에서 투쟁으로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아브라삭스로 날아가듯, ‘이별’은 이 세계를 깨고 ‘자유’를 찾아 다른 세계로 날아가는 투쟁이라는 인식이다. 작가는 더 깊게 추락하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권한다. 자유를 위한 추락이기에 마주하는 절망은 고통스럽지 않고 희망적이다. 이번 작품집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절망과 고통이 반드시 무겁지만은 않았다는 발견에 이르는 소설들”(소설가 송기원)인 이유이다. 그것은 “구름을 벗어난 산 위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맑은 시선”(소설가 송기원) 때문이리라. “부조리한 것, 부당한 것들, 얽히고설킨 사람 사이의 갈등과 넌덜머리나게 하는 모순들을 살아 있는 질감으로”(소설가 이경자) 냉정하게 풀어내는 부희령의 문장은 차가운 얼음에 부딪는 뜨거운 햇살의 쨍한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관계의 늪에 가라앉아
움츠리고 서성이고 스스로가 보아도 낯선

이번 작품집에는 관계의 늪에 가라앉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 중 일부는 이별하지 못하고 그 늪에 갇혀 있고 일부는 이별하여 다른 세계로 날아간다. 「콘도르는 날아가고」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소녀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자 현관문에 방범문을 덧달고 담장 위에 쇠창살을 빙 둘러 박는다. 다른 세계로 나아갈 생각조차 못한 채 이 세계에 더욱 견고한 울타리를 만들고 움츠려 들어앉는다. 소녀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방바닥에 널브러져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배 위로 두툼한 돈다발이 몇 뭉치 떨어졌다. 몸 위에 돈다발을 얹고 있으니 어머니는 사람이 아니라 개구리나 바퀴벌레처럼 보였다.”(12쪽) 「만주」에서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임돈의 아내 경옥이 붙잡혀 있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조선 농민들이 땅을 빼앗기고 만주로 강제이주되던 때이다. 손임돈은 독립자금 전달을 위해 만주로 가던 중 신경역 광장에서 패싸움에 휩쓸려 객사를 한다. 임돈은 “세상과의 아득한 거리를 모르핀 삼아 자기만의 세계로 달아나기”(127쪽)만 했던 죄책감에 만취해 있었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품에 안은 열한 살 기혁과 경옥이 객차를 탔을 때 “객차 안 승객들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흰옷 입은 어린 상주를 바라보았으나, 이경옥은 운명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을 만큼 오만했으므로, 그런 동정심조차 불편했다.”(129쪽) ‘오만’은 절망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더 큰 상처를 내는 칼이 아니던가. 이 세상에 남은 ‘오만’한 경옥은 스스로 절망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깊은 늪 속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귀가」에서는 과거의 온갖 형상과 얽혀 이 세계와 이별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나’가 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여기는 밖이고, 지금은 밤이고, 집에는 내가 없다”(134쪽)고 하지만 “캄캄한 골목 어둠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면서” “신발이 벗겨질 것 같아 초조해하며” “온 힘을 다해” 달려도 골목은 영영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진다. “귀가”하지 못한 나는 “이따금 옛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155쪽) 모두 떠나보낸 집안에는 생기가 없다. “이럴 수가 있나. 집이라는 건, 언제나 굳건하게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린아이인 나는 어른의 목소리로 중얼거린다.”(155쪽)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는 ‘무거움’을 덜어내고 이 세계에 붙박여 거듭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교양과 품위를 지키며 사는 네 명의 중년은 주말이면 모여 자신들의 죄악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선한 삶이 아니라 ‘무거움’을 덜어내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20대 젊은 여성을 불러놓고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 태우는 번제 의식을 진행한다. ‘무거움’을 덜어내고 “그래서 더욱 안락한 현재를 누리고자”(181쪽) 하는 것이다. 번제 의식 후 네 명의 중년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해진” 가슴으로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그들의 안락한 이 세상이 영원히 존재하려면 그들은 늪 속에 몸을 숨기고 계속해서 다른 세계를 희생시켜야 할 것이다. 「구름해석전문가」의 이경은 선우가 준 노트북을 들고 소설을 쓰기 위해 포카라로 간다. 하지만 노트북의 암호를 몰라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게다가 노트북을 준 선우는 다시 돌려달라고 계속 카톡을 보낸다. 소설가인 선우는 자유분방을 넘어서 무례하다. 하지만 그런 선우에게 수치심까지 느끼면서도 휩쓸리는 이경의 모습은 스스로도 낯설다. 「완전한 집」의 금희 역시 관계의 늪에 빠져 있다. 포카라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9년 만에 승문에게 메일을 받은 금희. “승문은 10여 년 전 인도와 네팔을 오래 떠돌다가 석 달 정도 한국에 머물면서 금희와 함께 살던 집을 팔았다. 그리고 문서와 현실 속의 모든 인연을 정리하고 떠났다. 미얀마로 가서 단기 출가할 작정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66쪽) 금희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된 윤의 권유로 포카라에 왔지만 정작 승문의 자취를 좇고 있다.

더 깊게 추락하고 더 높이 기어올라
한계를 마주하면

작품 중 관계의 늪에서 빠져나온 두 명의 인물이 있다. 「구름해석전문가」의 이경과 「완전한 집」의 금희이다. 이경과 금희를 통해 작가가 전하는 해법은 더 높은 꼭대기까지 기어오르거나 더 깊이 추락하여 이 세계와 이별하라는 것이다. 극한의 한계를 경험하고 고통을 뛰어넘으면 다른 세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구름해석전문가」의 이경은 암호를 풀지 못해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럼에도 두고 가고 싶지 않은”(53쪽) 선우의 노트북을 내려놓고 안나푸르나로 향한다. 더이상 걸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을 때 노트북을 두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은퇴한 쿠마리들을 만난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그들. 그리고 “처음으로 이경은 선우에게 노트북을 돌려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본문 중에서) 「완전한 집」의 금희는 일행의 결정에 휩쓸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합류하게 되고 “말 한마디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든”(본문 중에서) 상황을 거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식한다. 나아가 고집한다. 더이상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를 선택한 것이다. 일행에서 이탈해 혼자 향했던 호수에서 승문이 이야기했던, 멀리서 보았을 때 집인 줄 알았지만 가까이 가보니 벽이었다는 그 벽을 발견한다. 그 벽은 이제 “완전한 집”이다. 승문의 세상과 다른 자신의 세상을 발견한 것이다. “금희는 바람이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이 자리를 지나갈 때쯤 자신의 업도 흩어지고 사라지기를 소망”한다.(본문 중에서) 「콘도르는 날아가고」에서 등장하는 소녀는 아버지의 부재를 집안에 아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네번째 딸인 동생이 ‘가장 나쁜 잘못’이고, 가장 나쁜 잘못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갔지만 아마도 세번째 자신 또한 ‘잘못’이라 여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녀도 아버지를 ‘잘못’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본문 중에서) 또한 자신을 성추행한 붉은 벽돌집 남자의 차를 대못으로 긁는 복수를 한다. 하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소녀는 늪에서 빠져나와 이 세계와 이별하지 못한다. 소녀는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다는 사실을 떠올”(본문 중에서)린다. 그런 소녀를 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는 글의 말미에서 독재자의 죽음을 알림으로써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 “큰일났어. 대통령이 죽었대.”(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지은이 부희령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꽃』, 청소년 소설 『고양이 소녀』, 산문집 『무정에세이』, 앤솔러지 『선량하고 무해한 휴일 저녁의 그들』을 썼다.

목차소개

콘도르는 날아가고
구름해석전문가
완전한 집
만주
귀가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

해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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