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김효식(金孝植).김남천(金南天)은 일본 유학 시절인 1929년에 카프 도쿄 지부에 가입하였고, 기관지 《무산자》에 임화, 안막, 한재덕, 이북만, 김두용 등과 함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귀국 후 1930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 총파업에 참여하였으며,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곡 「파업조정안」과 단편 「공장신문」을 써냈다. 1931년 무렵에는 임화, 안막, 권환 등과 함께 김기진의 〈대중화론〉을 개량주의라 비판하고 문예운동의 볼셰비키화에 주력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이끌었다.
김남천은 1933년 안막이 평론 「창작방법문제의 재토의를 위하여」를 발표한 이후 제기된 사회주의 리얼리즘 논의에 참여하면서 이것이 처음 제창된 러시아와는 다른, 조선에 맞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법론을 고민했다. 그 결과
1937년 루카치(Luk?cs Gy?rgy. 1885~1971.)의 이론을 수용하여 ‘로만개조론’이라는 문학론을 펼쳤으며, 이 실천으로 첫 장편소설 『대하』를 집필해 발표했다.
1945년 김남천은 임화와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설립했고, 이 단체가 이듬해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 병합되며 조선문학가동맹이 결성되자 서기장에 선출되었다. 1947년 월북한 뒤에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을 역임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1953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세력 제거 당시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