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銀珠)야! 얘 은주야!』
춘성(春星)은 자기 집에 들어서며 댓바람에 계집종을 부른다. 부엌에서 행주로 그릇을 씻던 은주는 부엌 창살 틈으로 들어오는 춘성을 바라보더니 다시 본체만체하고,
『네』 대답을 하고 아무 말이 없다.
춘성의 시꺼먼 얼굴에는 취한 술기운이 올라와서 익히다 남은 간덩이같이 검붉은 데다 털 많은 얼굴을 맵시 내느라고 날마다 하는 면도 독이 시푸르뎅뎅하게 들었다.
그는 다시 마루로 올라가서 건넌방 미닫이를 열어젖히더니,
『은주야!』
하고 목청 질러 한 번 부르고서 답답한 칼라를 집어던지고서는,
『이 계집애가 귀가 먹었나? 에그 이게 무엇이냐? 방이 이게 무엇이냐! 이게 돼지우릿간이지 어디 사람 사는 방이냐? 얘 은주야! 은주야! 얘 목 아퍼! 은주야!』
일부러 대답을 안 하던 은주도 너무 떠드는 바람에 송구한 생각이 났던지,
『왜 그러세요!』
하고 발을 동동 구르듯이 부엌에서 뛰어나온다.
『왜 그러세요가 무어야! 너 오늘 종일 한 것이 무엇이냐? 왜 방 좀 치워놓으라니까 안 치웠어? 빗자루는 두었다가 군불이나 때련! 그리고 너 하루 종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흥, 너 요새 큰일 났더라, 큰일 났어!』
은주는 입을 쫑긋쫑긋하면서 눈살을 얄미웁게 찌푸리고,
『오늘 작은댁에 심부름 갔었어요』
하고서는 행주치마 속에다 두 손을 넣었다 꺼내어 입 속으로 남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무엇이라 종알종알 한다.
『심부름? 무슨 심부름을 가서 하루 종일 있어?』
은주는 아무 말이 없다. 뒷곁에 있던 춘성의 어미가 마루 뒷문에 나타나며,
『또 쌈한다. 오늘은 종일 어디 갔었니? 또 술 먹었구나. 그저 그렇게 일러도 듣지를 않아. 얘 어서 너는 상이나 보아라! 응』
하며 다시 은주를 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