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齒科醫) 정현수(鄭賢洙)는 테이블에 접혀진 채로 놓여 있는 그날 신문지 위에다 모잽이 글씨로 이렇게 휘갈겨 써 보았다. 그때 건너편 기공실(技工室)에서 조수(助手)로 있는 병일이가 더위를 못 이겨서인지 바쁘게 부채질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얼른 펜 끝에 잉크를 듬뿍 찍어 박박 긁어낼 듯이 이제 쓴 글자를 도로 지워 버렸다. 그리고 담배를 한 개 꺼내 물고 아침에 문을 연 후 아직까지 환자(患者)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안어 깨끗하게 정돈된 그대로 있는 치료실 안을 휘휘 돌아본 후 반질반질한 치료 의자 위에다 이파리 속에 숨어 있는 봉선화 같은 명희의 환영을 그려 안았다.
그는 두 눈에다 모든 정력을 집중시켜서 치료 의자가 놓인 편 공간을 응시하였다.
가느다란 두 눈을 옆으로 흘기듯이 굴리며 살짝 웃는 발그레한 입술 통통한 어깨 위에 아래턱을 얹고 눈을 쫑긋해 보이는 귀여운 표정, 겨울이나 여름이나 옥색 치마만 입으려는 그 명희의 환영에 현수는 혼을 잃고 앉아 있었다.
“명희씨 당신은 왜 옥색 치마를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옥색 치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에요. 옥색이란 그 빛깔이 좋아요.”
“왜 구태여 옥색입니까?”
“모르겠어요. 어쩐지 옥색을 보면 천변만화하는 이 세상에서 영원과 무궁이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나는 흰빛과 색깔은 흑색이 더 좋데요. 옥색은 곧잘 변하지 않습니까?”
“사 람의 손으로 된 옥색이야 잘 변하지요만, 저 광대무변의 하늘색이야 어디 변합니까. 구름이 끼고 밤이 오고 하면 없어지지만 그것은 다만 우리의 육안(肉眼)이 보지 못함에 불과하지 않아요. 비록 내 치마에 들인 하늘빛이 변하여 누렇게 된다하더라도 내 맘속에 비쳐 있는 그 맑은 옥색, 하늘색, 저 바닷물 색이야 변할 줄 있어요.”
“분홍색은 어떻습니까?”
“아주 슬퍼요. 아무리 고운 꽃이라도 그 색깔이 붉은 계통의 것이나 누런 계통의 것이라면 자주 싫습니다. 나는 작년 봄부터 푸른 꽃, 즉 옥색 꽃을 찾아보려고 높은 산으로 저 언덕 끝으로 쏘다녀 보았어요. 그래도 없더고만요.”
“옥색 꽃이야 꽃 장사 집에 가보면 더러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