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 이야기를 들을 만큼은 사랑이 남아 있나요?”
삶을 닮은 이야기, 사랑을 품은 시
사람의 내면이 가진 다종다양한 무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시인 김상혁의 네번째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가 문학동네시인선 192번으로 출간되었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김상혁의 시가 내포하는 아이러니를 미리부터 암시한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면서도 홀로 자유로울 자신을 생각하거나, 친지의 죽음을 앞두고 그의 실책이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이때 제목은 세파에 닳을 대로 닳아 놀랍고 새로울 일이 없다는 건조한 심상을 뜻한다. 하지만 회의와 무감함에 시달리는 이가 정작 꺼내는 말이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는 염려라는 데서 시는 한층 아이러니의 농도를 높인다. 사람의 심오하고 두터운 이면을 어루만지는 그의 아이러니는 다면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고스란히 긍정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삶이 초래하는 불안과 이별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위로이자, 사람에 대한 사랑이 된다.
김상혁의 시는 산뜻하고 귀여운 미소인 동시에 서늘하고 저릿하게 폐부를 찌르는 칼끝이다. 아이가 “‘사랑’까지 쓰고서 글씨 오른편 여백이 부족하면 나머지를 왼편에다 적어버”(「불확실한 인간」)린 ‘합니다사랑’이라든지, “세상에 유령이 없다면 슬플 것이다”(「유령이 없다면 슬프다」)라는 말을 듣고 실실거리는 유령처럼 술술 스며드는 김상혁의 시는 존재들의 만남이 자아내는 놀랍고 기쁜 우연을 맛보게 한다.
“그 팔은, 어찌된 일입니까?” 팔은 인생의 은유 같다.
이에 선천적으로 사지가 짧은 외국인 남성이 라디오에서 말하길, “그날 내가 십 센티미터만 손을 더 뻗을 수 있었더라면 국경을 넘다 카고 트럭 밑으로 굴러떨어진 딸애를 붙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자식이란 부모가 떼어내기도 마음껏 놀리기도 어려운 수족에 불과하다, 아이가 자립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생각만 든다. 쫓기고 붙잡히고 영 헤어지고 총 맞는 사람들 얘기는 신경도 못 썼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남성이 훌쩍거리기 시작했을 때 라디오 진행자가 이르길, “방금 동시통역사의 실수로 ‘팔’이라 물어야 할 것을 ‘딸’로 잘못 전달했다. 그래서 딸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의 짧은 팔에 관해 다른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_「팔과 딸」 전문
하지만 사람은 국경을 넘다 딸을 잃어버린 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어린 자식이란 부모가 떼어내기도 마음껏 놀리기도 어려운 수족에 불과하다, 아이가 자립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같은 생각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의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앞둔 동생도 결국엔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밀려나고 만다”며, 심지어 “어머니가 최고로 불쌍히 여긴 사람이 실은 어머니 자신이라는 것”을 꿰뚫어보는 시선은 스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가 어린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은 더없는 진실이다”(「엄마의 독」)라고 말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외국인 남성의 이야기를 옮겨 적는 시인은 사람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무시로 그는 나의 생활을 침범할 것이다
그러고는 곧 일어선다 우정에는 피로가 없다는 듯이
어느 영화에서 본 크루즈 여행, 어느 잡지에서 찾은 술집
그런 자리에서 나는 그를 위하여
그는 나를 위하여 미래가 무슨 대수냐 말해줄 텐데
우정에는 끝도 공포도 없다는 듯이
눈보라를 걸어도 좋다는 듯이
_「한겨울 진정한 친구는 어디에 있나」 부분
복잡다단한 사람들은 주춤거린다. “사랑이 충만했으나 실은 어둡고 조용한 그의 방을 떠나지 못하”(「사랑이 충만했으나」)는 이들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실천에는 서투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끊기지 않는 염려와 “침범”을 시인은 주목한다. 직선으로 곧장 뻗는 사랑이 아니라 복잡하게 주변을 오갈지라도 계속해서 내딛는 걸음에는 얼마나 진심이 담겨 있는지. 마음 둘 곳 없이 뿔뿔이 흩어져 “너무 아플 때는 몸이 마음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곳은 도시도 집도 인간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화자들은 그러나 “내가 친구를 원하고/ 친구가 나를 원하는 그 시간에/ 우리가 그것을 좋아했으면 좋겠다”(「좋은 것」)고 말하고,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방을 나오면 언제나 사랑받을 거라는 사실”(「동생 동물 2」)을 속삭인다. 방 밖으로 나서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과 마주하게 하고, 방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다릴 수 있게도 하는 의지의 북돋움, 그것이 바로 김상혁의 시가 가진 힘이다.
오래전에 죽은 할머니가 어디 산책하고 돌아온 것처럼 현관문 열고 들어올 때 죽도록 소리를 지를지 그녀를 안아줄지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
더 오래전에 죽은 할아버지 위독하니 무슨 병원 찾아가 손 한번 잡아주라 그녀가 조심스레 부탁할 때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지
이 불길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지는 또 당신의 선택
(……)
그러다 화구 속에서나 뜨거워 잠에서 깰지 아니면 사는 동안 무슨 이야기라도 될지
하여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있던 데로 돌아갔고
바람 부는 거리로 나온 당신이 과연 어떤 영혼을 눈 비비게 만드는 먼지가 되느냐
_「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부분
그러므로 김상혁의 시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 사람을 향해 열려 있다. 김상혁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자기 사연 말하게 하는 힘”이 있어 읽는 이가 “이야기를 타고 들어가 시 속에”(유희경, 발문에서) 살게 하기 때문이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아이러니한 자신의 마음에 할말을 잃어버린 사람, 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만은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가능성」)고 일러주고 싶은 사람에게 시는 자신을 대변하는 문장이 되어줄 것이다. 그때 또다시 시집의 제목은 “우리 둘”이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는 미래를 그럼에도 함께 살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된다.
이 사랑 가득한 시집을 펼치기 전에 독자에게는 딱 한 가지 준비운동이 요청된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들을 만큼은 사랑이 남아 있나요?”(「첫 소설」)라고 자문하기. 하지만 설령 사랑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끼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도 잊고 있던 사랑을 김상혁의 시가 일깨워줄 테니. 읽는 이는 그에게 하나의 ‘작은 집’이 되어주는 이 시집을 그저 평온히 즐기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