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부드럽게 감싸는 긍정
가볍게 뒤통수를 치는 듯한 반전의 경쾌함
과학적 사실조차 따뜻하게 느껴지는 마법 같은 이야기
기자가 되기 위해 5년을 준비했지만 실패하고 백수로 남은 은미는 할머니로부터 특명을 받는다. 임무의 내용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 간 후 16년간 소식이 없던 고모를 찾아 만나고 오라는 것. 그동안 고모는 할머니에게만 몰래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그 편지에는 고모가 미항공우주국의 우주비행사가 되었으며 멋진 활약 끝에 달로 완전히 이주해 살 예정이라는 거짓말 같은 소식이 실려 있다. 편지에 묘사된 우주의 풍경과 우주선 안에서의 생활, 고모가 성공시켜야만 하는 업무의 디테일은 고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만큼 세세하다.
하지만 은미는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미국에서 우주비행사로 일하며 우주를 유영한다는 꿈같은 일을 고모는 정말로 하게 된 것일까. 사실 거짓말 예찬론자였던 고모는 어린 은미가 거짓말로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은미를 따끔하게 가르친 뒤, 거짓말이 인생을 조금 더 살 만하게 만든다며 너그럽게 용서해준 적도 있었다. 고모는 심지어 아들 찬이를 임신한 것조차 감쪽같이 속여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전도유망한 과학자였던 고모는 그후 결혼해 미국으로 갔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한마디 설명도 없이 찬이만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채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딸이 낭만적인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 굳게 믿는 할머니는 고모가 달로 가서 더이상 연락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은미는 트랜스젠더가 되려는 잘생긴 남사친 민이와 함께 고모를 찾으러 낯선 세계로 떠난다. 고모의 활약상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도착한 미국에서, 은미와 민이는 인생의 비의를 깨닫고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넌 포기한 게 아니야, 잠깐 쉬는 거지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밤에도 반드시 끝은 오고
환해진 아침은 어제와는 다른 풍경으로 감각되니까
소설은 고모가 우주비행사로 일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흔적들과, 우주비행사라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고모의 삶의 모습을 긴장감 있게 오가며 독자를 고모가 감춘 비밀로 이끈다. 진실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고모가 지닌 경험의 깊이와 그로부터 비롯된 구김살 없는 낙천성은 은미를 통과해 읽는 이에게 전해져오며 삶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어준다. 살다보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거대한 좌절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 그저 살아 있기만 한다면 주어진 상황은 물론 그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언젠가 변화를 맞으며, 삶은 영영 지옥으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메시지가 적실한 희망을 안겨준다.
고모를 통해 삶이 언제나 꿈과 낭만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 그럼에도 가끔씩은 낭만을 가장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은미는 자신이 진짜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현실적인 일을 찾아 나서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청춘의 완결’을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표현해낸 2007년, 정작 작가 자신은 스물여섯의 나이로 청춘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한아가 일찍이 획득한 인생에 대한 깊고 정확한 통찰력이 청년기의 생생한 고민과 맞닿아 일어난 폭발적인 시너지가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힘있게 이끌어간다.
개정판 『달의 바다』는 어느덧 원숙한 중견작가가 된 정한아가 첫 장편을 낸 젊은 작가였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펴낸 책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원고를 다시 다듬으며 젊은 패기로 반짝이는 작품의 매력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더욱 원활한 독서를 뒷받침할 서술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조금의 부족함이나 넘침이 없는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어냈다. 책의 말미에는 『달의 바다』를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당시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와 정한아 작가의 그리움 가득한 대담이 수록되었다. 소설 속 은미가 고모와 재회하기까지 걸린 16년의 세월, 꼭 그만큼의 시간을 지나 소설가 정한아도 새로운 모습의 『달의 바다』를 통해 자신의 소설세계를 되돌아본다. 한 작가의 소설적 기원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조명하는 이 책은 소설을 독해하는 재미를 다각도로 모색하게 해준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