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나는 너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1과 0, 존재와 비존재가 공존하는 우리의 세계
새로운 시대의 관계를 모색하는 정밀한 시선
젊은작가상, 오늘의작가상, 김만중문학상 수상 작가
서이제 신작 소설집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 「두개골의 안과 밖」,
2022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수록
서이제의 두번째 소설집 『낮은 해상도로부터』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서이제는 2018년 중편소설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으로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채로운 소설 형식과 가독성 있는 서사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우리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그에 가장 걸맞은 문법으로 그려온 그는 문단에 등장한 지 불과 5년 만에 2021년, 2022년 2회 연속 젊은작가상, 오늘의작가상, 김만중문학상,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주관하는 ‘이 계절의 소설’에 세 차례 선정되며 현재 평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첫번째 소설집 『0%를 향하여』에서는 주로 영화나 대중음악 등의 형식을 빌려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낮은 해상도로부터』에서는 인터넷과 미디어, SNS 등의 디지털 매체를 중심으로 현시대에서 타인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아이돌이 된 사촌형에게 질투를 느끼면서도 어느 순간 그를 ‘덕질’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백수(「#바보스타상자」), 벽간 소음에 시달리다 랩 가사를 끊임없이 인용하며 분노의 독백을 이어나가는 힙합 애호가(「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 매 순간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담는 것으로 삶의 허기를 채우는 쇼핑 중독자(「위시리스트♥」), SNS로 만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끼지만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연극배우(「●LIVE」)의 이야기 등 서이제의 소설들은 흥미진진한 외연으로 가득한데, 그것들은 단지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현시대 우리 삶의 중심을 관통하는 통찰로 이어진다.
서이제는 과감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전통적인 소설의 틀을 파괴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인터넷의 화면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텍스트들, 중간중간 삽입된 이미지와 기호들, 몽타주처럼 파편적으로 편집된 문단들 등의 활용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픽셀, 비트 등 정보화시대의 근원적 단위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박혜진, 해설에서)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돈 소설가가 “서이제는 동시대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책은 경험이 불가능한 시대의 찬가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 시대를 선명하게 재현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전기electronic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내면, 기억, 애정
이 책을 펼치면 가장 앞서 만나게 될 「#바보스타상자」는 어느 날 아이돌 ‘윤일오’가 되어 나타난 사촌형 재호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는 진호의 이야기이다. 천체관측동아리에서 고요하게 별을 보는 것을 즐기던 진호는 대학 졸업 후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백수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짝사랑하는 예리가 윤일오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뜻하지 않게 그녀와 함께 이제는 재호가 아닌 윤일오를 ‘덕질’하게 된다. 진호는 그 과정을 통해 재호를 다시 알아간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유튜브, 뉴스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심지어 고층 빌딩 전광판에서 그는 재호, 아니 윤일오를 만난다. 윤일오는 그곳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재호는 그 정보들을 통해 마치 닿을 수 없는 거리의 별을 관찰하듯 윤일오를 들여다본다.
이처럼 실제 공간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이 디지털 세계에서 파편화된 정체성으로 존재하게 되는 상황은 서이제 소설의 전반에 걸쳐 그려지고 있는데, 이어지는 「출처 없음, 출처 없음」에서는 이러한 정체성의 분화가 더욱 분명하게 보여진다. 한 메타버스 플랫폼 회사가 만든 가상현실 게임 <로맨틱 아일랜드>에서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나’의 친구 현호는 현실과 게임에서 각각 다른 애인을 가지고 있으며, 게임 속에서 ‘루이 16세’라는 닉네임으로 황금튤립 농장을 운영하는 현호의 또다른 애인은 각종 루머에 시달리다 연예계를 떠난 아역배우 출신 남성 배우 신이정으로 밝혀진다. SNS에서의 관계를 다룬 「●LIVE」에서도 이와 같은 정체성의 혼재가 나타난다. 연극배우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팬이라고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과 조금씩 깊은 마음을 나누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는 상대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독서 취향과 전공을 알고, 그가 작업한 미술 작품을 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작업물이라고 올린 작품들이 사실은 어느 외국 작가의 작품임이 밝혀지며, ‘나’는 얼굴도 이름도 취향도 실제 직업도 알 수 없는, 그러나 수없이 통화로 마음을 나눴던 사람을 자신이 안다고 할 수 있는지 깊은 의문에 빠진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마음. 그것은 이 책의 표제작인 「낮은 해상도로부터」에서 집요하게 탐구된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얼굴을 모르는 두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동생이 될 뻔했지만 파양된 아이, 트위터를 통해서만 알고 지내다 어느 날 계정이 삭제된 사람. 기억 속에서 낮은 해상도의 픽셀로 떠오르는 ‘너’들. 그들을 계속해서 떠올리는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소셜네트워크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이 하나의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서 곳곳에 존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너로부터 다시 메시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것은 네가 아니라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너는 이미 하나의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내게 감정을 야기했다. 그런데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에게 감정을 느끼는 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_「낮은 해상도로부터」, 본문 중에서
대중문화와 하위문화가 뒤섞여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게 된 풍경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되었다. 영화와 음악, 미술과 문학 등의 문화적 코드가 기저에 흐르는 서이제의 소설 속에서 그러한 풍경은 더욱 구체화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왜인지 모르게 자꾸 과거의 시간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화시대의 단면을 그려낸 서이제 소설의 주요한 정서 중 하나가 바로 노스탤지어라는 것.
「벽과 선을 넘는 플로우」의 ‘나’는 벽간 소음에 시달린다. 소음의 원인은 옆집에서 랩 연습을 위해 틀어둔 비트 소리. 밤마다 울려퍼지는 트랩 비트에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 ‘나’는 그에게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 역시 힙합을 사랑하고, 이제는 사라진 힙합 레이블 소울컴퍼니를 그리워하고 있던 ‘나’의 독백에는 어쩔 수 없이 랩 가사들이 끼어든다. 그래서 그가 쓰려는 글은 옆집 사람에 대한 항의문이 아니라 함께 힙합을 사랑하고 추억을 나눴던 지예에게 쓰는 편지가 된다. 「영원에 다가가기」에서 ‘너’는 미래의 기술인 메타버스 프로그램 <뉴 어스>를 통해 1919년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 소설가 조르주 뒤몽을 만난다. 조르주 뒤몽이라는 젊은 작가는 『영원의 문』이라는 소설을 집필한 뒤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것은 이후 형에 의해 유고집으로 출간된다. 현실 세계의 ‘너’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넷플릭스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시간을 허비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서는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에서 조르주 뒤몽의 낭독회에 참석하고, 이윽고 조르주 뒤몽이 된다. 「자유낙하」는 먼 훗날 지구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른 행성으로 퍼져 살고 있는 먼 미래의 인류가 21세기의 예술 작품을 발굴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나’는 자신이 발견한 수백 년 전 영상 파일이 고고학적 사료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려 노력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료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다름 아닌 예술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법하다. 그것은 해설에서 박혜진 평론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예술은 진실한 정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아마도 그것이 예술이라는 표현 형식이 서이제 소설 전반에 걸쳐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주요한 척도가 되는 정보라는 믿음.
『낮은 해상도로부터』라는 소설집의 제목은 얼핏 보면 저해상도에서 고해상도로 향하는 여정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이제의 이야기는 높은 해상도로의 이행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끊임없이 되짚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픽셀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초고해상도로 펼쳐지는 세상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길, 낮은 해상도로 존재했던 과거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내면, 기억, 애정’이야말로 우리가 정보기술 패러다임 속에서, 무한히 가공되며 확장되는 네트워크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챙겨야 할 방향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해설에서)는 박혜진 평론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존재와 비존재, 과거와 미래, 여기와 저기
연결을 통해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의 풍경
1과 0이라는 이진 부호는 디지털을 구성하는 요소인 동시에 있음과 없음, 즉 존재와 비존재를 상징한다. 서이제가 그려내고 있는 세상, 즉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존재와 비존재가 공존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과 AI와 같이 과학기술이 탄생시킨 존재들을 뜻하기도 하지만, 물리적 공간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인간과 데이터 시대에 정보와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인간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여기에 있는 동시에 저기에 있고, 모든 곳에 있으며 아무데도 없기도 한 존재다. 서이제는 이러한 세계를 손쉽게 대상화하지 않고, 지금-여기 우리의 생태로서 온전히 그려낸다. 존재와 비존재, 과거와 미래, 여기와 저기는 현재라는 공간에서 뒤엉킨 채 존재한다. 이러한 초연결의 시대에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연결된 서로는 무한히 확장된다. 그 연결과 확장을 정밀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어쩌면 지금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하고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