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몇 차례나 더 지구를 휩쓸고 지나간 2040년대
악화일로의 세계 속에서 ‘나’를 맡길 만한 ‘집합가족’ 탐사기
2018년 등단한 이후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펼치면서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페이지 터너’ 작가로 확고히 자리잡아온 은모든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한 사람을 더하면』이 출간되었다. 기후 변화와 경제 위기가 거듭된 204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들이닥칠 디스토피아를 또렷하게 그려내 보임과 동시에, 엄습하는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세계를 가능케 할 인간의 의지와 사랑을 믿게 한다. 독자를 흡인하는 유려하고 감각적인 전개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인물, 담백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장들이 탁월하게 어우러진 이야기를 통해.
가속화된 기후 변화와 수차례 닥친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 위기가 일상화되고, 급격히 낮아진 출생률에 따른 노년 인구의 급증으로 생계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여기에 웬만한 수입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할 만큼 ‘독신세’ 부담이 가중되자 사람들은 “혈연의 제약을 벗어던진 애착의 공동체”인 ‘집합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주인공 이심은 의사가 되어 간절히 바라왔던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었지만, “이 구역의 납세왕” 처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집합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모이는 ‘무도회장’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그는 풍족한 경제력에다 각자의 성격과 역할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정서적인 충만함까지 두루 갖춘 한 가족을 만난다. 자신의 마지막 조각을 찾았다고 확신한 이심은 그들의 일원이 되기 위해 집에 방문하고, 그곳에서 그 가족에게 도사리고 있던 예상치 못한 갈등을 마주한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이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가족에는 미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틀림없다. 이심은 그렇게 확신했다. 위층에서 다급히 뛰어내려온 소리가 “엄마, 로아가 이상해요!” 하고 외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178쪽)
“몇십 년 뒤, 이 소설을 가리켜 예언서라고 부르게 되는 건 아닐까? (…) 이거, 소설인 거지? 현실 아니지? 아직은”이라는 이다혜 작가의 추천사처럼 『한 사람을 더하면』은 오늘날의 세계가 이대로 지속될 때 분명히 가닿을 미래를 서늘하리만치 소상하게 구현해낸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홀로그램을 눈앞에 자유자재로 띄우거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찬란한 풍경을 확장 현실로 구현해 냄새와 촉감까지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딘가에서 생체 데이터의 조작과 재생산마저 가능해져 비밀리에 인간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이 소문을 더욱 증폭시키는 존재는 총리 경규철이다. 인기 없는 아나운서에서 예능 피디와 유튜버, 논객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더니 전 국민에게 ‘시민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으로 총리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 지속 불가능한 시민 수당이 물가만 폭등시켰음에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반대자들을 제압하고 독재 체제를 확립해낸 그는 자신의 욕망을 무한한 권력과 영생에 맞춘다. 대기업들과 결탁해 바이오센터 붐을 만들어내더니, ‘테크노 비엔날레’를 개최해 국민과 국가 전체를 장악할 안드로이드의 도입에 나선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낄 때마다 이심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이미 너무 많이 일어나버렸다고 악을 쓰며 소리치고 싶었다. 동시에 당장 전 국민이 시청하는 공영 뉴스에 등장하여 악을 쓴다고 하더라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흘이 지난 후, 이심은 그날의 첫 진료를 위해 방문한 노부부의 집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사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300쪽)
아무래도 희망은 저 멀리서 잡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를 더할 수 있다면
그러나 은모든은 우리에게 보다 나은 미래가 가능하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집합가족이 될 사람들을 살피는 이심의 망막 이면에는 원가족이 어른거린다. 이심은 옛날만을 되새기며 악화일로의 세태를 한탄하는 엄마가 좀더 빨리 아빠를 떼어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투자가 번번이 실패하며 엄마에게 도망도 못 갈 빚을 끼얹었던 아빠. 이심은 아빠와 자신은 다를 거라고 다짐한다. 돈만을 좇으면서 점차 “미움과 원망을 겹겹이 더해갈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사이라면 응당 그러해야 할 다정과 의무감을 갖춘 가족을 선택할 것이므로. 이제 이심의 앞에도 엄마와 같이 인생의 갈림길이 놓였다. 그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내리게 될까?
‘한 사람을 더하면’이라는 제목은 우리로 하여금 비관만을 허락하는 환경과 조건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가족을 이룰 각각의 한 사람들을, 그리고 올바른 세계를 구축해낼 한 표를 가리킨다. 은모든은 그러한 낙관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매력 가득한 인물들을 창조해낸다. 점점 나빠져가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칠 정도로 강한 신념을 지닌 최선생과 그의 집합가족 딸 선민, 그리고 어설프고 서툰 바텐더지만 그런 실수마저도 자꾸만 바라보고 싶게 하는 사랑스러운 모영과 같은 이들이 소설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주저하고 견디는 데 익숙한 소시민 이심은 우리들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는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고안해내거나 앞에 나서서 군중을 이끌기보단 대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지만, 변화의 들불이 일어날 때 기꺼이 한 사람의 몫을 더할 준비가 된 이심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일깨운다. 바로 우리의 DNA에 새겨진, 세상을 바꾼 적 있던 혁명의 기억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한 사람을 더하면』은 미래로부터 절체절명의 현재에 당도한 하나의 간절한 당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