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단편소설이다. 전라도 덕유산(德裕山)은 남방에 이름 있는 장산(壯山)이다. 송림이 울창하고 골짜기가 깊으며 만학천봉(萬壑千峰)이 엉기어서 백주에도 해를 우러러 보기가 힘들고 맹수와 독충이 행객을 위협하는 험산이다. 때는 선조대왕 말엽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 아직도 인심이 안돈되지 않아서 흉흉한 기분이 남조선 전체를 덮고 있는 때였다. 가을해도 어느덧 봉우리 뒤로 숨어버리고 검푸른 밤의 기분이 이 산골짜기 일대를 덮으려 하는 때였다. 저녁해도 없어지고 바야흐로 밤에 잠기려 하는 이 무인산곡(無人山谷)을 한 젊은 선비가 헤매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 분명하였다. 벌써 단풍든 잡초가 무성하여 눈앞이 보이지 않는 덤불 사이를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선비는 방황하고 있었다. 버석버석 선비가 발을 옮길 때마다 잡초만 좌우로 쓰러지지 아무리 헤매도 길이 나서지를 않는다. 웬만한 산골 같으면 하다 못해 적채하는 여인이나 초부들의 외발자욱 길이라도 있으련만 하도 심산궁곡이라 그런 길조차 없고 잡초만 빽빽하여 눈앞을 가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