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지기 호랑이로 태어나리 는 구경분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설악산과 지리산을 비롯해 국내 명산을 탐방하면서 쓴 89편의 시가 총 6부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설악산과 지리산 등 국내 명산을 노래한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 시집은 종이책을 찾는 독자가 많았다. 그렇지만 국내 서점들의 불황과 도서 배송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기에 출간되어 재판을 못 내고 있다가 이번에 전자책으로 다시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신과 자연 앞에 감사하며 자주 산을 찾는다. 시인의 육성을 직접 한번 들어보자.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다. 우선은 내가 멀쩡한 육신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 만에 하나 내가 어느 한구석이라도 미비한 채로 태어났다면 그 미흡함으로 인하여 얼마나 고뇌하며 살았겠는가! 어쩌다가 앞을 못 보거나 말을 못하거나 듣지를 못하는 사람을 보거나 팔다리가 불편하여 혼자서는 꼼짝도 못하는 사람을 볼 때 온갖 병으로 인하여 이웃이 없으면 하루도 살기 어려운 이들을 볼 때 그렇지 않은 내 자신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어디 그 뿐이랴! 하루를 사는 동안에도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감사로 시작된다. 내가 새아침을 맞은 것이 기막히게 감사하고 오관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출근길에 층계에서 실수하여 무릎이 깨져 피가 나도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내어도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그런지 텔레비전이나 신문지상에서 아무리 뒤숭숭한 뉴스를 내보내도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며 산다. 어쩌다 산을 오르거나 여행을 다닐 때 나는 그 감사의 마음이 더욱 솟구쳐 늘 가슴이 설렌다. 산에서 만나는 작은 풀꽃 하나까지도 나만을 위해 피어 있는 것 같은 생각에 전율이 오도록 반갑다. 나무를 껴안으면 나무와 교감이 되고 바위에 앉으면 바위와 교감이 된다. 내가 산을 오를 때 남달리 발걸음이 늦은 것은 몸이 둔하여 등산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하고 참견해야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와 등산을 해도 나는 언제나 제일 뒤에서 여유롭게 걷는다. 정상을 목표로 나는 듯이 달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뒤에서 느릿거리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늘 등산 종료 시간에 딱 맞추어 내려올 정도만큼의 여유로 산길을 걷는다. 여행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를 좋아한다. 나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생긴 것과 전혀 다르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 나를 촌스럽다고 여긴다. 그래도 나는 평생을 이대로 촌스럽게 산다. 촌스러움 그 자체가 나를 편안하게 하고 또한 이웃을 더불어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펴내는 ‘설악산지기 호랑이로 태어나리’는 그동안 내가 돌아다녔던 곳의 기록을 모은 것이다. 더 많은 곳을 다녔지만 두 번 세 번을 가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가 하면 단 한 번을 가더라도 감흥이 넘치는 곳이 있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단 한 번의 만남인데도 평생을 그리움으로 안는가 하면 늘상 자주 보아도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 나는 산을 다니며 산에게 겸손을 배우고 여행을 하며 여행지에서 삶의 소중함을 배운다. 이리 저리 두루 돌아다니며 쉼 없이 배우고 깨우쳐 나를 갈고 닦아 단 한 번의 만남에도 여운을 길게 줄 수 있는 그런 향기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 고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