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우울증, 도저히 혼자선 용기가 나질 않네요.
외로운 저승길, 좋은 분들과 함께 떠나고 싶습니다.”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
모든 것을 상실한
상처받은 청춘들의 자살 이야기
이 책은 자살을 단순히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해 고민해보게 한다. 에밀 뒤르켐이 “자살은 사회 현상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취업, 학업, 왕따, 상실, 보이스피싱, 성소수자 등의 사회문제가 어떻게 보편적인 개인문제가 되어 20대 꽃청춘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명수, 미진, 영욱, 현아, 슬기, 혜경, 주택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다. 그들이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돌아보며 현시대의 사회문제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한다.
“그래, 죽자고!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작가는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선택이 필요 없을 때는 차라리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였을까. 상처 입은 일곱 명, 명수·미진·영욱·현아·슬기·혜경·주택은 모든 것을 잃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고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그들이 선택한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취준생 6년 차 명수는 계속되는 취업 실패로 더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선택지 없는 죽음을 떠올렸다.
수능을 망친 미진이 생각하는 죽음은 도피였다. 부모의 기대는 그녀로 하여금 숨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숨을 쉬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영욱은 자신에게 징역형을 내리고 스스로를 가두었지만 우울과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현아는 희망이자 모든 것이었던 200만 원을 보이스피싱으로 날리고 더러운 세상과 작별하기로 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기는 상실감에 한 차례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녀에게 죽음은 먼저 간 그에게 이르는 만남의 다른 말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움을 느낀 성소수자 혜경은 사회적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주택은 영농 지원 정책에 따라 열심히 교육받고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빚밖에 남지 않은 신용불량자가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준혁은 그들을 죽음의 늪에서 구하고 시나리오의 디테일과 경험 확대를 위해 그들의 죽음에 동조하고 동반자살에 휩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