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휘두르는 칼 끝 떨림으로 잠재된 절망, 사랑. 상처. 죄의식, 슬픔 이란 언어와 소통 하다 보니 나의 문학 세계를 잘못 들여다 보면, 혹여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글이 그렇듯이 전선에 않은 참새들이 오선지에다 지저귀는 대로 글귀가 떠오를 때는 마음 가는 데로 글을 썼다.
난 이제 지금껏 몸 담았던 삶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바라건데, 앞으로 남은 세상은 인간의 향기가 물씬 뭍어 나는 그런 삶으로 마감 했음 좋으리라고 생각해보며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를 나타내는 불교용어로서 ‘돈오’는 순간적인 깨우침을 의미하며, ‘점수’는 쉼 없는 수행을 의미)을 되세기며 남은 인생길 글도 그렇게 써내려 가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 가면 엄청난 책이 널려있고 그중 닥치는데로 서정주 류시화 정호승 김소월시집과 엣세이집을 펼처 들은것 같아요
헌데 몇줄을 읽다가도 뜻도 이해가 안돼고 한편의 시를 다 읽어도 무슨 의미 인지도 모르겠더군요
국어책을 뒤적여 보니까 비유 은유 점층등 무슨 그리 국어에도 법이 많터군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도 대충 글을 흉내 낼때 서양사람들의 시와 팝숑을 접했지요 혼자 아 이거다
그래 펜 끝에서 뭔 법이 있냐ᆢ
그러면서 서서이 나의 글도 서양 노래 말처럼 따라 해봤죠 버지니아의 슬픔 처럼 말이죠 글구 2017년 시인으로 당선 등단 될때 거의 남모른게 홀로 30년쯤 쓴글을 한국지필 문학과 월간시사문단, 문학의봄에서 평가받아 시인 당선 축하 메세지를 받으며 세군데 모두 특유의 영미 시인이라고 평을 하더군요
제 첫시집 바다에가서얘기해줄게 시집 해설에도 그렇고 당시 시인 등단 평가도 그러했습니다
시를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같은 공감대를 형성 할수 없을까 문학은 쉬워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늘 글을 씁니다
아직도 어떤 시인은 반대로 엄청난 단어와 시어를 찾기 위해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죠
그런 분들 시를 지금도 간혹 손에 잡고 며칠을 보고 또 봐도 이해를 못하고 나의 손에서는 글쓴이의 이름만 남게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공계 학교를 다녀서 혼자만의 생각 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요즈음 뜨는 나태주 이해인 시인님 무척 존경 합니다 그런분 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쉽게 일기처럼 저 처럼 써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