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직업은 웃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때론 사람들과 같이 울고 싶습니다.”
단 한 번 예능에서 코미디 대신 쓰고 읽은 시
단 한 편으로 사람들을 울린 양세형의 첫 시집
코미디언 양세형의 첫 시집 『별의 길』(이야기장수)이 출간되었다. 언뜻 의외의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들을 웃겨주는 이 코미디언과 시의 만남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단어들을 조립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행복한 놀이’를 즐겼다는 그는 후배 개그맨들의 결혼식에서 직접 쓴 감동적인 축시를 낭독해 유튜브 10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는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된 「별의 길」을 즉석에서 쓰고 낭독해 패널들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는 여태까지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않았으나, 온라인상에서는 그의 시 「별의 길」을 필사하거나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사람까지 나타났고, 그는 시집 없는 시인으로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조용히 시를 선물해왔다.
사람들이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그리고 시는 더더욱 팔리지 않는 시대―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가 유독 한적한 시 코너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는 그는 이제 오랫동안 써왔던 자작시들을 엮어 첫 시집을 내놓는다. 자신이 탁월하게 가장 잘 쓰는 사람이라서 시집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기는 코미디언 양세형도 이렇게 시를 좋아하고 직접 쓰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지 않고 가까이하며 읽고 쓰고 아껴주기를 그는 바란다. 시라는 이 ‘행복한 놀이’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공유되기를 바란다. 양세형에게 시는 일상 속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떠올리는 단어를 받아 적으면 말이 되는 너무 쉬운 글’이기에(「시를 쓰게 하는 당신에게」, 44~45쪽). 또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굳이 작가나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계속 바라보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글이기에.
어려운 말 하나 없이 단정하고 깨끗한 일상어로 쓰인 양세형의 시집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코미디언의 기쁨과 슬픔, 일상 풍경에서 양말 한 짝, 구름 한 점을 보고 상상한 재치 있고 애틋한 시들이 가득하다. 또한 몸은 영락없이 아이인데 얼굴은 지긋이 나이든 어른인 <아저씨> 시리즈를 통해 현대의 ‘우는 어른’들을 포착해온 박진성 조각가의 조각작품들을 시와 함께 절묘하게 배치해 시집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양세형 작가는 시집 『별의 길』의 저자 인세 수익금 전액을 위기에 빠진 청소년들을 돕는 ‘등대장학회’에 기부한다.
시라는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1985년 8월 경기도 동두천에서 태어나 국민학교 시절 앞으로는 논밭, 뒤로는 산이 있는 마을에 살았습니다. 워낙 조용한 동네라 떠들썩한 것이라곤 새 울음소리 풀벌레 소리 흙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전부인 곳이었습니다.
신발가방을 발로 차며 걸었던 논두렁길, 마을 입구를 지키는 아카시아나무 아래 누워 가로등 없는 길 위로 더 반짝이던 밤하늘을 보면서 신비로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무식한 머릿속에선 설명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하나의 단어들을 끄집어내어 조립하면 글이 되었고, 어린 시절 저는 혼자만의 행복한 놀이에 빠져들었습니다.
마흔 살이 다가오는 지금도
신비로운 감정은 불쑥불쑥 찾아옵니다.
_서문에서
“웃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때론 이런 생각도 합니다.”
이 시집이 출간되어 세상에 나가기 시작하는 12월 4일은 공교롭게도 암투병 끝에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의 생신이다. 이 시집엔 아버지에 대한 시들이 유독 많다. 아버지를 향한 깊은 그리움이 이 시집의 어느 부분들을 태어나게 했을 것이다. “아빠가 해주는 삼겹살김치볶음 먹고 싶어요”라고 투정을 부려보다가, 하루는 아버지의 옛 전화번호로 문득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차가운 목소리만 매번 돌아오지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전화번호가 있다.(「아빠 번호」)
방송과 무대에서 재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그의 일상과 머릿속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들도 눈에 띈다. 그의 하늘엔 아무도 보지 못하고 궁금해하지 않는 공룡과 불사조가 나타나고, 고단한 하루 끝엔 벗어놓은 양말이 ‘세탁기와 벽 틈 사이를 오르다 지쳐’ 멍하니 세탁바구니를 바라본다.
보산 국민학교 운동장/나에게만 보였던/하늘의 거대한 공룡 구름은//디지털미디어시티 광장에서도/역시나 나에게만 보인다.// 부리부리한 눈과/날카로운 발톱의/거대한 공룡이 나타났는데/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제발 누구라도 봤으면 좋겠다./오늘은 공룡 뒤로/불사조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개 들어 하늘 봐요」전문)
얼마나 외로웠을까./한쪽 양말/서랍 깊숙이 어두운 곳에/울다 지쳐/엎드려 잠들어 있다.// 짝짝이 양말들 속/한쪽 양말/얼마나 서러웠을까./얼마나 부러웠을까./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한쪽 양말/세탁기와 벽 틈 사이/오르다 지쳐/세탁바구니 멍하니 본다. (「양말」)
“지치고 괴롭고 웃고 울었더니
빛나는 별이 되었다.”
양세형 작가의 시엔 유독 ‘별’의 심상이 많이 등장한다. 돌아가셔서 하늘의 별이 된 아버지, 관객석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코미디언들을 향해 박수치는 사람들, 가끔 초라하고 슬프지만 아침마다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시작하는 사람들, 그러다 다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반짝거리는 사람들, 남몰래 울고 싶은 어른들, 이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별’이 된다.
마냥 웃겨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눈물과 그리움이 있고, 누구의 삶에나 “넘어가는 길 긁힌 팔꿈치에서 느꼈던 아픔 그리고 웃음”이 있다.
그래서 양세형은 계속 쓴다.
“아픔을 닦으면 내일은 웃음이다.”(「190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