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수화기를 통해 무덤덤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나야.” 남자가 말했다. “네~” 여자가 대답했다. “별일 없나?” 남자가 물었다. “네, 요즘에 손주 아기들 재롱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아기들이 천사 같아요.” 아기들의 얘기를 하는 목소리에 약간 생기가 돌았다. 그녀의 자녀들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져 큰아이 작은아이 집집마다 있는 손주 아기들을 보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어젯밤의 일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에게 어떤 추궁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다.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의 파트너인 남자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녀가 밖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을 쌓고 미래를 약속하고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를 함부로 방치해 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혜롭고 현명하며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아름다운 그녀의 일탈은 그 사람과의 깊은 갈등을 견디지 못한 그녀의 마지막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