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吳貞姬 1947. 11. 9.~ )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후 「주자」(1969), 「직녀」(1970), 「관계」(1971), 「봄날」(1973), 「적요」(1975), 「안개의 둑」(1976), 「미명」(1977), 「불의 강」(1977), 「저녁의 게임」(1979), 「중국인 거리」(1979), 「비어 있는 들」(1979), 「유년의 뜰」(1980), 「별사(別辭)」(1981), 「그림자 밟기」(1987), 「파로호」(1989) 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하였다.
1977년 첫 창작집 『불의 강』을 출간한 이래 작품집 『유년의 뜰』(1981), 『동경(銅鏡)』(1983), 『옛 우물』(1994), 『바람의 넋』(1986), 『불망비』(1987), 『불꽃놀이』(1995), 『새』(1996), 『돼지꿈』(2008), 『가을 여자』(2009) 등을 발간하였다.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제3회 이상문학상을, 1982년 「동경」으로 제15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오정희의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변형 욕구’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변형 욕구는 개인의 내면으로 굴절되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따라서 그녀의 내면 의식 세계는 외부의 현실보다 더 넓고 다양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소설 세계는 다양하지만 좁고, 미묘하고 섬뜩하지만 거칠지 않은 것이다.
오상원(吳尙源 1930. 11. 5 ~ 1985. 12. 3) 소설가. 호 횡보(橫步)
1930년 11월 5일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나 용산고등학교를 거쳐 1953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신극협의회의 희곡 현상모집에 《녹스는 파편》과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유예(猶豫)》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58년 단편 《모반(謀反)》으로 제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작품활동보다는 언론계에 열중했다. 《동아일보》 출판국 심의위원으로 있던 1985년 12월 3일에 사망했다.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랑스의 행동주의 문학과 실존주의 문학을 접하였고,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빚어진 인간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소설을 썼다. 그의 작품 가운데 《균열(龜裂)》(1955), 《증인》(1956)은 그러한 성격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또한 한국의 전후작가(戰後作家)로 손꼽히는데,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모반(謀反)》(1957)과 장편 《백지의 기록》(1957)은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하는 작품이다.
《모반》에서는 8·15광복 직후 좌우 대립의 혼란 속에서 요인을 암살하고 내적인 방황을 겪는 테러리스트로서의 청년당원들의 상황을 중심으로 진정한 애국과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백지의 기록》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불구와 그로 인한 문제 및 치유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상원의 주된 관심은 해방과 동란이라는 혼란 속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상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심에는 실존주의 사상과 행동주의적 휴머니즘 사조의 영향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려운 상황과 대결하는 인간의지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경향은 초기의 희곡 작품인 《녹스는 파편》, 《이상(裏傷)》(1956), 《잔상》(1956) 따위에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1960년대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창작 활동을 전개하지 않았으며, 그 내용의 측면에서도 행동주의적 특성이 많이 약화되어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1970년대 후반 절필하였으며, 《동아일보》기자와 논설위원을 지냈다.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1970년 《땀흘리는 한국인》이라는 기행문을 연재했고, 1974년 논설위원이 되었다.
1970년대에는 우화형식의 시사풍자류를 자주 발표하였으며, 《늙은 여우》, 《임금님의 어금니》(1987), 《토끼의 눈》 등 정치와 사회에 대한 우화를 모아 《오상원 우화》를 간행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산》(1981), 《겹친 과거》(1985) 등 회고적인 성격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이밖에도 《죽음에의 훈련》(1955), 《탄흔》(1956), 《황선지대》(1960), 《어떤 죽음》(1976), 《하오》(1977), 《잃어버렸던 이야기》(1977) 등을 비롯해, 평론으로 《〈앙드레 말로〉와 초현실주의 문학》(1960)이 있다.
김동리(金東里 1913. 11. 24 ~ 1995. 6. 17) 아명 창봉, 본명은 창귀, 자는 시종.
1934년 시 《백로(白鷺)》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등단하였다.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면서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山火)》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47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 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新人間主義)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 《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으로 《무녀도(巫女圖)》(1947) 《역마(驛馬)》(1948) 《황토기(黃土記)》(1949) 《귀환장정(歸還壯丁)》(1951) 《실존무(實存舞)》(1955) 《사반의 십자가》(1958) 《등신불(等身佛)》(1963),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 시집으로 《바위》(1936),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다. 예술원상 및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이호철(李浩哲 1932. 3. 15 ~ 2016. 9. 18)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6.25전쟁으로 인한 민족분단의 비극과 이산가족문제를 중점적으로 작품화해 분단소설사를 엮은 대표적 분단작가이자 탈북작가이다. 원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원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아 교내 문학서클의 책임자로 활약했다. 1950년 원산고등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맞아 인민군에 동원되었다가 국군포로가 되어 북송되던 중 풀려나자, 그해 12월 단신으로 월남해 부산에서 부두노동자, 미군부대 경비원 등으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등단작을 비롯한 초기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1955년 황순원(黃順元)에 의해 단편소설 《탈향(脫鄕)》이 문예지 《문학예술》에 추천되고, 이듬해 《나상(裸像)》으로 추천이 완료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분단의 아픔을 그린 《탈향》을 비롯해 《나상》 《소묘》 《파열구》 등 전쟁의 상흔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초기 작품들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남북분단문제를 비롯해 남쪽 소시민들의 삶을 예리한 역사감각으로 조명해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초기의 서정적 차원에서 벗어나 현실세계를 넓게 포용하는 객관적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특히 1961년 《사상계》에 발표한 단편소설 《판문점》은 초기의 개인적 체험에서 사회적 현실로 관심의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서 작가의 문학적 변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소설로 평가된다.
이후 《닳아지는 살들》(1962) 《무너앉는 소리》(1963) 등 분단상황이 작품의 저변에 깔려 있는 단편을 비롯해 분단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정착하지 못하는 월남민의 왜곡된 삶과 현실세태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소시민》(1964)을 발표하면서 작품세계의 확실한 변화를 드러내게 되어 《퇴역 선임하사》 《자유만복》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어느 이발소》 《탈사육자회의》 등 사회성이 강한 풍자문학적 경향을 띠게 된다. 1970년대에는 민족수호국민협의회 운영위원으로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재야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현실참여의 경험을 통해 분단상황으로 야기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인식을 더욱 공고히 가지게 되고, 이러한 작가적 변모는 이후의 작품 《그 겨울의 긴 계곡》 《문》 《물은 흘러서 강》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 외에도 자유실천문인협회 대표(1985~), 소설가협회 공동대표(1985~),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1987~), 대한민국예술원 회원(1992~), 국민통합추진회의 고문(1996~), 방송위원회 위원(1997~) 등을 역임하며 사회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였다. 이 밖에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1969~1974)에서 강의했으며, 1994년 연변 조선족 민족문학학원 한국문학강좌의 강사로 초청강의를 했고, 1997년부터 경원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문학상으로 현대문학상 신인상(1961), 동인문학상(1962), 대한민국문학상(1989), 대산문학상(1996), 대한민국예술원상(1998)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작품집 《나상》(1961) 《서울은 만원이다》(1966) 《공복사회》(1968) 《사월의 빙원》(1971) 《닳아지는 살들》(1975) 《남풍북풍》(1977) 《그 겨울의 긴 계곡》(1978) 《소시민》(1979) 《문》(1981) 《물은 흘러서 강》(1984) 《악마의 덫》(1984) 《밥과 희망과 우리들의 공동체》(1985) 《탈사육자회의》(1986) 《천상천하》(1986) 《판문점》(1988) 《퇴역 선임하사》(1989) 《네겹 두른 족속들》(1989) 《빈 골짜기》(1989) 《개화와 척사》(1992) 《남녘사람 북녘사람》(1996) 《이산타령 친족타령》(2001) 등이 있다. 이 밖에 산문집 《세기말의 사상기행》 《산 울리는 소리》 《희망의 거처》 《문단골 사람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등이 있다.
최인호(崔仁浩 1945. 10. 17 ~ 2013. 9. 25)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58년 서울중학과 1961년 서울고교를 거쳐 1964년 연세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여 1972년에 졸업하였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1970년대 작가군의 선두주자’라 불리며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가 극을 이루던 1970년대 초 한국문단에 소설붐을 일으켰다.
최인호의 문학세계는 1970년대에 진행된 산업화와 관련되어 본격소설과 대중소설이라는 양면성을 띤다. 《미개인》(1971) 《타인의 방》(1971) 《처세술 개론》(1971) 《무서운 복수》(1972) 《돌의 초상》(1978) 《깊고 푸른 밤》(1982) 등 단편 위주의 소설은, 우리 사회의 도시화 과정이 지닌 문제점을 예리하게 반영하면서 신선한 감수성과 경쾌한 문체를 통해 ‘1970년대적 감성의 혁명’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불새》 《적도의 꽃》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등의 신문연재 소설은 도시적 감수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그의 작가적 성향을 높인 것으로 1970, 1980년대 최고의 대중소설작가인 동시에 ‘통속적 소비문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 등으로 당대의 사랑관과 사회관을 소설화해오던 그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후 장편 《잃어버린 왕국》 《왕도의 비밀》 등의 역사소설과 종교소설 《길 없는 길》 등을 발표하여 문학적 영역을 넓혔으며, 1993년부터 가톨릭 〈서울 주보〉에 ‘말씀의 이삭’이라는 칼럼을 연재한다.
이밖에도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당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저서에 소설집 《타인의 방》(1973) 《우리들의 시대》(1975) 《내 마음의 풍차》(1975) 《개미의 탑》(1977) 《돌의 초상》(1978) 《불새》(1980) 《위대한 유산》(1982) 《가면무도회》(1983) 《밤의 침묵》(1985) 《저 혼자 깊어 가는 강》(1987) 《잃어버린 왕국》(1988) 《길없는 길》(1993) 《왕도의 비밀》(1995) 《사랑의 기쁨》(1997) 《길 없는 길》(1997) 《상도》(2000) 《잃어버린 왕국》(2003) 《해신》(2003) 《제왕의 문》(2004) 《지구인》(2005) 《유림》(2005)《제4의 제국》(2006) 등이 있고, 수필집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1986)와 성서묵상집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1995)《산중일기》(2008) 등이 있다.
1967년 단편 《2와 1/2》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타인의 방》과 《처세술 개론》으로 현대문학상 신인상(1972), 《깊고 푸른 밤》으로 이상문학상(1982),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 각본상(1986)과 대종상 각본상(1986), 《길 없는 길》로 불교출판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박경리(朴景利 1926. 10. 28 ~ 2008. 5. 5) 본명 박금이(朴今伊)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4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못 떠나는 배》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2008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생명의 아픔 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는 토지문화재단 창립하여 이사장을 맡아 강원도 원주에서 토지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토지의 문학사적 성과를 인정받아 1994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5년부터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석좌교수를 역임하였고, 1997년에는 제3회 용재석좌교수상을 수상하고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72년 토지(제1부)로 월탄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인촌상(1981), 보관문화훈장(1992), 올해의 여성상(1994), 호암상(1996)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박완서(朴婉緖 1931. 10. 20 ~ 2011. 1. 22)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6·25전쟁과 분단문제, 물질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비판을 사회현상과 연관해서 작품화하고 있다.
첫 작품 《나목》을 비롯하여 《세모》(1971) 《부처님 근처》(1973) 《카메라와 워커》(1975) 《엄마의 말뚝》(1980)을 통하여 6.25전쟁으로 초래된 작가 개인의 혹독한 시련을 냉철한 리얼리즘에 입각한 산문정신으로 작품화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살아있는 날의 시작》(1980) 《서 있는 여자》(19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면서 여성의 억압문제에 눈길을 주게 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사별하고 신앙생활(가톨릭)에 몰두하였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 자전적인 소설을 발표하면서 6.25전쟁의 오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막힘없는 유려한 문체와 일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중년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 결합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현실을 그려낼 뿐 아니라, 치밀한 심리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삶에 대한 애착, 핏줄에 대한 애정과 일상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한국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이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1980),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1981),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1990)과 제3회 이산문학상(1991),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1993),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25회 동인문학상(1994),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제5회 대산문학상(1997),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로 제1회 황순원문학상(2001)을 수상했으며, 1998년 문화관광부에서 수여하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에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 《창 밖은 봄》(1977) 《배반의 여름》(1978) 《도둑맞은 가난》(1981) 《엄마의 말뚝》(1982) 《꽃을 찾아서》(1986) 《저문 날의 삽화》(1991) 《나의 아름다운 이웃》(1991) 《한 말씀만 하소서》(1994)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등이 있고,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 《혼자 부르는 합창》(1977) 《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1990) 《어른노릇 사람노릇》(1998)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