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마켓

이종숙 | 교유서가 | 2024년 01월 18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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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그래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잊어. 잊는 게 상책이야.”

얼룩덜룩한 기억이 가득한 스마일 마켓입니다
오랜 폭력에 불안한 당신을 환영합니다

·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2013년에 단편소설 「모크샤」로 계간 〈불교문예〉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법계문학상, 한국소설작가상, 직지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종숙의 신작 소설집 『스마일 마켓』이 교유서가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과거의 폭력이 오늘날까지 메아리치는 상황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소리에 고통받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폭력의 기나긴 순환을 영원히 맴돌아야 할까? 이 소설집은 인종차별과 국가폭력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묘사하며 그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느닷없이 그들을 공격하지만, 그들은 트라우마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과거보다 소중한 오늘이 있다. 그렇기에 광범위한 폭력에 맞서는 일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어제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기다림,
희뿌연 적과 싸우는 무력한 시간

“기다리라고? 또 기다리라고?”
삼십 년 전처럼, 우리는 또 이렇게 기다려야만 한다는 말이냐고 외치던 태오는 몸의 이상한 변화를 느끼며 주저앉았다. 어둠 속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들어와 닥치는 대로 물건을 가져갔다. 자신은 누군가의 총구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그가 연신 중얼거렸다. _34쪽

표제작 「스마일 마켓」은 인종차별 사건의 피해자인 ‘태오’가 겪는 일상의 불안을 묘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을 여러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이 소설은 과거에서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폭력의 끈을 드러낸다.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어렵게 마켓을 운영하던 태오는 어느 날 길거리에 쓰러진 한 아시아인을 돕는다. 그러나 그 선행은 인종차별 피해로 이어진다. 노인인 태오는 그날 일을 그냥 잊자고, 잊기만 하면 문제는 더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마켓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태오는 언제라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제 태오는 오래된 불안과 보이지 않는 적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
한 역사적 사건의 그림자가 이 소설에 드리운다. 경찰관들이 운전수 로드니 킹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시작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한인사회에도 충격을 줬다. 당시 코리아타운의 많은 가게가 폭동의 표적이 되었다. 자경단을 조직한 가게 주인들은 총기를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가게를 지켰다. 많은 한인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힌 그 악몽은 어쩌면 뒷날에 이어질 끝없는 인종차별의 전조였을까? 과거는 죽지 않았고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는 미국 소설가의 문장이 이 소설에 공명한다.

부재에서 불어나는 환각의 통증,
남겨진 자를 살도록 하는 뼈아픈 상실감

“손가락, 내 손가락을 찾아줘요.”
백지장처럼 변한 얼굴이 청색이 되었다가 다시 흑색으로 변한 후에야 사람들이 나섰다. 사람들이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텀벙대며 잘린 손가락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물은 맑아지지 않았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며 기다릴 수도 없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말했듯 애국과 충성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숙명이었다. _58쪽

「손가락」은 ‘정원’이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정원의 아버지에겐 통일 후에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면 자동차에 가족을 태우고 집안 어른들을 찾아가고 싶다는 꿈이 있다. 장남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장교가 되고 막내는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던 소원은 포기했다. 운전면허증만 취득한다면 아버지는 고향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버지에겐 돌발이 문제였다. 불시에 멈추어야 하는 코스인 돌발상황이 제시되면 아버지는 우왕좌왕해서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 돌발에 대처할 수 있다면 합격은 눈앞에 있다.
돌발은 아버지의 인생에 가득했다. 정원의 할아버지는 남북을 오가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아버지는 영평제 축대를 쌓다가 손가락을 잃었다. 예상하지 못한 그 돌발상황들은 국가폭력에서 비롯했다. 군복과 제방이 상기시키는 폭력성은 군중의 박수 소리처럼 커서 개개인을 침묵시킨다. 누구도 나라와 사회에 반역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 폭력이 남긴 표상은 오늘날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환지통, 있지도 않은 손가락이 느끼는 아픔은 상실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잃은 뒤에 찾아오는 통증, 그것은 슬픔이 불러온 환각이다. _69쪽

정원의 가족에게 남은 상처는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인 흉터다. 분단으로 생긴 할아버지의 부재는 손가락의 부재만큼이나 뼈아프다. 그 생이별은 화자의 가족에게 가슴에 사무치는 잔상을 남겼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 빈자리에 맞춰 하루하루를 설계한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일상이 있다. 이 소설에서 정원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 일상이 어떤 풍경으로 채워지는지 설명한다. 떠나간 이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이 내일을 향한 기대로 점차 누그러진다. 상실의 상처가 아물지 않더라도 화자의 가족은 또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아버지는 운전면허증을 따려는 스무번째 도전에 임할 것이다. 정원의 가족은 어떤 돌발이 찾아올지라도 함께 그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국가폭력의 역사도 그 유대감에 생채기를 남기지 못한다.

저자소개

지은이 이종숙
2013년 계간 〈불교문예〉에 단편 「모크샤」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푸른 별의 노래』, 소설집 『아 유 레디?』, 여행에세이 『오늘은 경주』가 있다.
법계문학상, 한국소설작가상, 직지소설문학상을 수상했고, 2020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되었다.
현재 ‘썸띵’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소개

스마일 마켓
손가락

해설: 부재가 아닌 무능과 과잉으로부터의 서사_임현(소설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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