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이 통제된 미개통 도로에서
한 사람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다
의문의 사건에 휘말려 위독해진 기업 총수의 자제,
그가 감춰둔 단서를 조합해
거액이 든 금고의 패스워드를 찾아라!
사건의 진범과 검은돈 200억원을 쫓으며 펼쳐지는
레이싱 미스터리 추격극!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해 마법과도 같은 자기 내면의 힘을 인식하게 되는 이야기를 선보여온 소설가 이수안의 두번째 장편소설 『블랙 아이스』가 출간되었다. 2019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할 당시 “슬픔과 고통을 대범하게 끌어안는 성숙성, 세상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긍정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작가는 2021년 첫 장편소설 『시커의 영역』으로 제4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초자연적인 소재와 흥미로운 세계관, 생동감 넘치는 인물을 통해 “좋은 장편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평을 받으며, 작가 이수안은 스토리텔러로서 새로운 궤적을 그려 보였다.
『블랙 아이스』는 첫 장편 『시커의 영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강렬하게 내뿜는 미스터리 소설로, 다양한 서사를 솜씨 있게 부려내는 이수안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출입이 금지된 미개통 도로에서 한 사람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쓰러져 있던 사람은 건설 회사 회장 김상진의 자제 김유영. 유영은 김회장이 가장 아끼는 자식이자 김회장이 세탁한 검은돈 200억원을 인출하는 데 필요한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유영이 발견되기 직전 그 도로를 통과한 슈퍼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회장은 자동차에 일가견이 있는 측근들을 불러모아 유영이 휘말린 사건을 해결하고 패스워드를 되찾아줄 것을 의뢰한다. 유영을 해한 범인과 검은돈 200억원을 쫓으며 소설은 등장인물들 각각의 결핍과 욕망에 다가서고, 이들의 이야기가 풀려나가며 사건의 전말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수안이 발표하는 첫 미스터리임을 믿기 어려울 만큼 몰입감 넘치는 전개가 특징인 이 작품은, 화려한 스포츠카 레이싱과 함께 진정한 꿈을 가진 이들과 끝없는 탐욕을 가진 이들이 각각 어떤 삶을 향해 나아가는지 박진감 넘치는 필체로 펼쳐 보인다.
“만약에 자네들에게 100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겠나?”
“내 질문이 틀렸군. 만약 자네들에게 100억의 보수가 주어진다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겠나?”
김회장의 의뢰를 받은 중고차 딜러 차인성과 자동차 정비사 신준희는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를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이다. 어린 나이에 미혼부가 되어 홀로 아들을 키우는 차인성은 언젠가 멋진 스포츠카를 소유하는 게 꿈이지만, 희소병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꿈을 잠시 접어두고 성실히 사업을 일궈나가고 있다. 신준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동차 사고로 잃고 괴로워하지만, 스포츠카를 향한 연인의 뜨거운 애정을 기리며 여전히 취미이자 일로서 소중히 차를 대한다. 그러나 언뜻 단단해 보이는 준희에게도 깊은 상처가 있다. 바로 김회장과 그의 전 부인 채희주에 대한 원망이다. 그들은 자식인 유영과 조카인 준희를 기르며 간혹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왔고, 그것이 오래도록 준희를 괴롭게 한 것이다.
차인성과 신준희 두 사람은 패스워드를 찾기 위해 콤비를 이뤄 유영이 남긴 흔적을 쫓기 시작한다. 그간 이수안 작가가 천착해온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머금고, 소설은 패스워드에 대한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나간다. 준희는 과연 상처를 대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유영을 해치려 한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과연 두 사람은 패스워드를 알아내고 김회장이 약속한 100억원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자동차 마니아인 작가의 취향이 곁들여진 이 소설에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S와 포르셰 GT2 RS를 포함하여 다양한 스포츠카가 등장해 이야기를 힘차게 이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의 등장으로 내연기관을 가진 차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지금, 작가는 언젠가 사라질지 모를 스포츠카의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속도감을 통해 청년 세대의 꿈과 욕망을 향한 질주를 은유하는 듯하다. 등장인물이 오랜 시간 지녀온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리고 공허한 탐욕이 우리를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를 상기시키며 소설은 결말로 달려나간다. 가슴 뛰는 꿈을 지닌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스포츠카 레이싱이 자아내는 속도감으로 가득한 이 소설은 독자들을 숨막히는 미스터리 추격극 속으로 금세 빨려들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