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우리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들은 그 자리 그대로, 거기서 그들만의 소리로 의미를 실어 전하거늘, 우리는 말하고 글자를 쓰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 뜻을 다 알아내지 못하여 애가타서, 오늘도 어떤 대상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소매를 걷는다. 나에게로 오라고 와보라고, 소리를 치면서,
가르치고 배우며, 나도 한번 형설지공을 이루어 내보려고 몸부림 쳤던, 타관 땅, 돌고 돈 객지생활도 반세기가 넘어간다. 평생 시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이 사람도 이제 바람 따라 살아가는 나이, 종심(從心)을 바라본다.
23세의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로 교단에 첫발을 디딘 후, 중 . 고등학교 국어과 교사로 시인의 길을 걸어가면서, 모든 사회적 권력과 권위와 재물에 대한 꿈을 접었다. 그리고 문학에 적극적으로 접근해가면서 평생 시를 썼다. 어느 누구와의 경쟁도 이권 다툼도 아닌 오직 자신과 싸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어떻게 글자에 담아낼 것인가에 온정신을 쏟았다. 어쩌면 이 일도 가장 수월하게 접근하는 방법은 세속을 탈출하여 깊은 산속 사찰을 찾아가 면벽수도하며 성인의 말씀 경전을 읽고 도를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쪽이 더 의미가 크고 가깝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종교인은 도를 닦거나 기도에 전념하며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을 가깝게 다가가는, 모든 번뇌와 인간적 욕망을 버리고 수도에 전념하시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시인 화가들은 종교인들과 다르게 세속을 떠날 수가 없다. 그들은 우리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조화, 조응, 공명하는 현상을 관조하며 진실을 찾아 감성을 투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찾아낸 미학적 진실이 인간정신을 고아하게 순화 적층하기에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하는 것이다.
정음시초라는 테마주제 연작시를 쓰고 있는 이 사람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단이라는 정해진 사회적 구조 안에서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가면서 살아왔다. 더 많은 지식에 접근하기 위하여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이 대학 저 대학원 야간강좌를 찾아다니며 참 많은 스승님들의 말씀을 들었다. 본인의 허약한 신체적 조건으로 병마와 싸워가며 죽음의 뒤안길을 돌아보면서도 분필과 펜과 그림붓을 들고 놓지 않았다. 우리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은 아닐지라도 그 자리 그대로 그 존재의 당위적 가치를 알리는 그 소리와 몸짓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몸부림쳤다.
이 일만이 논에서 흙을 뒤엎으며 허리가 굽도록 등짐을 많이 지신 아버님과 밭에서 씨를 파종하고 흙덩이를 헤치며 흙과 함께 사시다가 일찍 세상을 뜨신 어머님께 보답해 드리는 유일한 길이라 이 시인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내 시간의 흔적들, 기억에서 살아져서 기억의 저편으로 침잠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 기억들을 찾아가며, 우리말 어휘시어 시, ㄱ에서 ㅎ까지, 상편, 가.나.다.라. 중편, 마.바.사.아.자, 하편, 차.카.타.파.하. 각 일백 편씩 일천 사백 수를 지어, 정음시초(正音詩抄) 제 1집을 묶어 본다. 시적 감성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음시초(正音詩抄) 시 창작을 계속해 갈 것이다. 평생 시인의 길을 걸어가도록 깊고 너른 학문과 사랑을 주신 스승님들께 감사의 인사와 재생의 길을 가도록 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2012년 3월 22일. 시인 김 석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