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백조(白潮) 에 발표. 할머니의 임종을 중심으로 여러 가족들의 심리를 포착한 단편소설. 작가가 초기의 신변 소설에서 객관적 심리 묘사로 진일보하는 면모를 보인다. 염상섭의 {임종(臨終)}과 상당 부분 유사한 분위기를 지녔다. 이 작품은 현진건이 신변 소설에서 객관적인 심리 묘사 소설로 변화하는 계기를 이루는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임종을 준비하고 있는 가족의 행동을 그린 단편이다. 죽음을 거부하려는 할머니의 허망한 몸짓과 이를 지켜 보는 가족들의 이기적이고 작위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임종을 앞에둔 인심과 인정을 실감 있게 포착하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손들이 조모주 병환 위독 이라는 전보를 받고 모인다. 그러나 나 는 할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벌어지는 자손들의 모습에서 천륜으로 얽혀진 끊을 수 없는 정(情)보다는 요식 행위와도 같은 형식적인 인간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더욱이 할머니에게 효(孝)를 다하는 중모(仲母)에게서 나 는 효가 지신의 위치를 드러내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간파한다. 즉 중모의 행위가 도덕적 우월의 표시임을 깨닫는다. 결국 한고비를 넘기고 할머니의 죽음이 시일을 끌자 자손들은 모두 흩어지고 할머니는 외롭게 죽는다. 이 소설의 묘미는 구성적 측면에서 돋보인다. 즉 어느 아름다운 봄날 깨끗하게 봄 옷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우이동 벚꽃놀이를 나가다가 사망 전보를 받는 마지막 장면은 객관적이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조모주 병환 위독 이라는 전보로 시작하여 오전 3시 조모주 별세 라는 전보로 끝나는 결구(結構)도 매우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