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성과 현실성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 인식 태도가 상호 작용하면서 빚어낸 독특한 풍경이 존재하는 『지새는 안개』에서 낭만적 정체성은 현실감각과 성찰적 시선에 의해 낭만적 아이러니를 발생시키면서 형성되고 있다. 『지새는 안개』는 구애(求愛)-이별-재회의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연애서사로서 이 같은 플롯은 주인공이 세계와 합일하고 타락하고 회복되는 구성을 취하는 낭만주의적 서사구조에 대응한다. 『지새는 안개』에서 연애는 열정의 순수성만을 무한 복제하기보다 자기 성찰의 시선으로 그 열정을 통제함으로써 나르시시즘적인 환상과 자기 비탄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는 윤리적 방식으로 정당성을 획득한다. 실연과 ‘타락’의 과정은 지사(志士)적 이상과 열정이 ‘스노비즘(snobbism)’이 만연한 사회의 부정성으로 인해 환멸로 전환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주체의 위악의 포즈로서 이 과정을 통해 상상적 질서에 갇혀 있던 순진한 자아는 세계와의 불화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존재로서 정체성을 탐색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지새는 안개』는 합일과 타락 그리고 회복을 경험한 인물의 자기 성찰 과정을 통해 연애의 진정성을 추구함으로써 연애의 사회적 맥락을 추구한다. 이처럼 『지새는 안개』의 서사는 연애 충동과 그 연애의 충족 불가능성 사이 그리고 자기실현 욕망과 현실적 불가능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구축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연애는 사회적 관계가 차단된 내적 체험이나 비생산적인 체험이 아니라 낭만적 주체가 현실과 접합하는 모럴(moral) 혹은 윤리적 척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