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은 ?냉동어?에서 냉엄한 현실 속의 한 지식인을 그렸다. 그는 애초에 신념과 생활을 지닌 인물이었으나 더 이상 한가롭게 대처할 수 없는 시대에 묵묵히 자기응시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써야 될 내용’이 요구되는 시절에 이를 적절한 안전장치로 사용하며 필요한 것은 감추고 불필요한 것은 마음놓고 드러내며 피할 수 없는 자신의 허무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종래에 없던 자전적 주인공을 세워 연애담의 줄거리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 준 것도 일종의 ‘감추기 위한 드러내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채만식이 이 작품을 계기로 친일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은 재고의 여지가 많다. 그는 단지 연애담의 서사구조로 화석화하는 허무의식과 함께 자기응시의 과정을 담담히 그렸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친일’에 대한 단죄가 우리의 소임이 아닌 이상 보다 복합적인 시각으로 당시의 정신사적 지형도를 파악하고 작가의 사유과정을 천착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이에 작품 자체가 맨 처음의 자리에 놓여야 함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