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64주기(2.16)에 다시, 윤동주 시의 깊이를 가늠하다 윤동주의 시대인식을 다시 말하다 제1부에 실은 글들을 굳이 논문의 형태로 쓴 것은 그 글들에 담은 내용들이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어서, 그 보고를 겸한 까닭이다. 논문의 형태를 띤지라 긴 각주를 달고 있는 생소함이 없지 않겠으나, 그 서술 문장은 평이(平易), 간명(簡明)하기를 힘썼다. 책 첫머리에 실은 글 `윤동주 성년기 시의 의미와 위상`은 윤동주 그가 막 성년에 이르렀던 중학교 4학년 무렵(용정 광명중학 4학년, 1936년 6월)에 벌써 참담한 시대에 대한 단단한 인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논증한 글이다. 그가 일장기, 만주국기가 휘날리는 모순된 현실을 목격하면서 쓴 시 `이런 날`에서 시대의 모습을 ‘모순’으로 파악했던 점이 그 같은 그의 시대인식을 선명하게 보여준 예이다. 그 다음으로 실은 글 `윤동주 詩의 시대인식`은 그의 7년 반(1934.12~1942.6)에 걸친 시들이 시대인식을 그려내기도 하고(+), 그것을 회피하기도 하면서(-) 전개되었음을 말하려고 했다. 필자는 앞의 두 글들에서 굳이 논쟁의 형태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으나, 위 글들은 윤동주의 시들이 저항시 또는 참여시와는 무관하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쐐기를 박으려고 했음을 밝혀두고 싶다. 제1기 제2기 제3기 제4기 1934.12. 1936.3. 1936.9. 1940.연말.~ 1936.3.20. 1936.8. 1939.연말 1942.6. (-) (+) (-) (+) 세번째로 실은 글 `윤동주 詩에서의 이상 詩의 영향`은 윤동주가 그의 시의 본격적 제작기의 시들에서 이상 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말하려고 했다. 종래에 윤동주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는 정지용을 말하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경향이었으나, 앞 글에서는 윤동주에게 끼친 이상 시의 영향이 정지용의 영향보다도 오히려 더욱 컸다는 점을 밝히려고 했다. `윤동주와 그의 시의 일본체험`에서는 윤동주가 어떻게 민족정신을 품으면서 침략자 일제에 대하여 눈을 떴던가를 살폈다. 그런 뒤에 그의 시들이 침략자 일제에 대결하도록 의지를 굳혀 나가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다. 시인이 국내에 체류했던 때의 시작품들에서는 그가 그 자신을 응시하거나 자신의 의식이 분화된 모습으로써 일제에 대결하기를 모색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했던 윤동주에게 유학으로 말미암았던 일본 체류는 그의 시작에도, 그 자신의 일신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 안에서 일본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도일 이전에 자신이 품었던 태도를 부분적으로라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체일 이후 윤동주 시에서의 그러한 변화는 도일 직후에 쓴 시 `흰 그림자`에 비교적 상세히 나타나 있다. 윤동주의 일본 유학에서도 그런 모습이 드러나듯이 그는 일본과 당시의 시대적 현상으로서 일제를 구별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가 체일했던 때에 쓴 `흐르는 거리`, `쉽게 씌어진 詩`에서도 그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일본인에게 느꼈던 친근감을 만나볼 수 있다.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이웃 나라 일본을 향한 친애의 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하수인들은 그와 송몽규 같은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제를 위태롭게 하는 이들로 지목하면서 죽음의 길로 몰아넣어 버리고 말았다. 윤동주의 원고는 어떻게 보관되어 전해졌는가 윤동주가 일경에게 체포되고 끝내 투옥, 옥사의 참변을 당했던 때에, 그가 조선, 만주에 남겼던 시, 산문 같은 글들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정성스럽게 보관되고 있었음을 살피려 했다. 정병욱, 강처중 같은 시인 생전에 가까웠던 친구들과 용정의 가족들의 돌봄을 받으면서였다. 잘 짐작할 수 있듯이 일제가 광란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던 때에 윤동주의 원고 같은 위험물들을 보관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요구되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20대였던 정병욱, 강처중 같은 젊은이들이 그런 역할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음은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깨어 있었던가를 생생히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뒷날의 일이지만 광복 뒤에 시인의 누이 부부가 시인의 원고를 등짐으로 지고 38선을 넘어섰던 일도 앞의 경우처럼 사람의 일에 정성을 쏟은 경우로 읽혀진다. 이 책에서는 윤동주의 원고들이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 작용하였던 그 정성스럽고 용기에 찬 손길을 살펴보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