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여기, 희미한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어느 날 헛간의 썩은 볏짚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기’이다. 다른 아이는 트럭을 끌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가 여관에 맡겨두었다. 그 소녀는 기가 일하는 여관의 ‘404호’에 산다. 소년과 소녀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 친해지고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는 건 김유진의 화법이 아니다. 다만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그들은 여름 휴양지로 반짝 성수기를 이루는 이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마을에 안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이윽고 분노한다. 그리고 소년은 마을에 불을 지른다. 김유진 특유의 단단한 문장들이 담고 있는 시적 분위기는 한층 안정되고 아름다워졌다. 한 소년과 한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불안과 분노에 관한 정밀한 보고서인 동시에, 사랑의 전조에 관한 은밀한 서사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