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백민(白民) 10월 호에 전반부가 1949년 1월 호에 후반부가 실린 중편소설이다. 작가 채만식 자신의 일제 강점기 친일 행위에 대한 ‘반성’과 ‘변명’이 담긴 자전적 소설. 모두 문필가였던 세 사람이 등장하여 식민지 시대의 행적에 대하여 비판과 반박과 자기 옹호의 논리를 편다. 그러나 ‘나’는 침묵한다. 민족의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한계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일 협력의 ‘수렁’에 빠져 들었던 경위를 고백하면서 자기 변명의 태도로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카가 등장하는데 그 조카를 꾸짖는 ‘나’의 심경이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채만식의 다른 작품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광복 후 친일(親日) 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 써진 작품이었지만 당시 작가나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시대인식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보이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나 소극적 내지는 부정적 태도 속에서 역으로 일제 말의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한편 이 작품은 채만식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행적과 생각 그리고 시대상황이 모두 채만식의 그것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하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꼿꼿한 자존심과 애국심이 아니라 그저 힘의 논리에 따라 친일행위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한다. 또 동맹휴학을 하려는 동무들로부터 달아나려는 조카를 훈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한 질책의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당시 친일 행위를 한 인사들을 청산하는 것이 사회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채만식은 그에 대한 두려움을 소설로 나타낸 것이다. 「민족의 죄인」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듯이 일제 말 친일 강연과 작품 창작을 했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고백한 자전적 성격을 띤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하나의 단순한 참회록과는 성격이 다르며 어떤 의미에서는 친일 행위를 하게 된 과정과 배경을 일체 불문에 부친 채 오로지 그 결과만 놓고 단죄를 일삼으려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지식인 사회의 풍토 같은 것에 대한 항변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