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책 한 권〉(금성 1924. 5)·〈가을〉(조선문단 1925. 11) 등을 발표한 뒤 소설 〈파금 破琴〉(조선일보 1931. 1. 27~2. 3)·〈어머니와 딸〉(혜성 1931. 5~1932. 4)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당시 간도의 사정을 잘 그린 수필 〈간도를 등지면서〉(동광 1932. 8)·〈간도야 잘 있거라〉(동광 1932. 10) 등과 사상적 스승이자 동지인 남편과의 관계를 그린 수필 〈원고 첫 낭독〉(신가정 1933. 6)·〈표모(漂母)의 마음〉(신가정 1934. 6) 등을 발표했다. 남편 장하일은 사상범으로 체포된 경험이 있고 만주에서도 계속 활동한 민족운동가였다. 그녀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과 직접 관계하지 않았음에도 사회과학적 현실인식이 뚜렷한 작가의식을 바탕으로 진보적 사실주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도움으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