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단편소설이다. 그날 밤에 그의 안해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고-- 공연히 내일 일을 글탄 말라고 어느 눈치 빠른 어른이 타일러 놓셨다. 옳고 말고다. 그는 하루치씩만 잔뜩 산(生)다. 이런 복음에 곱신히 그는 벙어리(속지 말라) 처럼 말(言)이 없다. 잔뜩 산다. 안해에게 무엇을 물어보리요? 그러니까 안해는 대답할 일이 생기지 않고 따라서 부부는 식물처럼 조용하다. 그러나 식물은 아니다. 아닐 뿐 아니라 여간 동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귤 궤짝 만한 방안에 무슨 연줄로 언제부터 이렇게 있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오늘 다음에 오늘이 있는 것. 내일 조금 전에 오늘이 있는 것. 이런 것은 영 따지지 않기로 하고 그저 얼마든지 오늘 오늘 오늘 오늘 헐 일없이 눈 가린 마차 말의 동강난 視야다. 눈을 뜬다. 이번에는 생시가 보인다. 꿈에는 생시를 꿈꾸고 생시에는 꿈을 꿈꾸고 어느 것이나 재미있다. 오후 네 시. 옮겨 앉은 아침-- 여기가 아침이냐. 날마다다. 그러나 물론 그는 한 번씩 한 번씩이다. (어떤 거대한 母체가 나를 여기다 갖다버렸나)-- 그저 한없이 게으른 것-- 사람 노릇을 하는 체 대체 어디 얼마나 기껏 게으를 수 있나 좀 해보자-- 게으르자-- 그저 한없이 게으르자-- 시끄러워도 그저 모른 체하고 게으르기만 하면 다 된다. 살고 게으르고 죽고-- 가로대 사는 것이라면 떡먹기다. 하루가 한 시간도 없는 것이라고로서니 무슨 성화가 생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