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이 193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유라가 소파에 걸어앉아 화집의 장을 번기고 있는 동안에 나는 방 한구석에서 알콜 풍로에 물을 끓이며 차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든 아내가 치료를 칭탁하고 시골로 내려간 후로는 손수 차 만드는 것이 나의 일과의 하나였다. 차도구의 일절을 방안에 들여놓고 두터운 책상 옆에는 발자크 모양으로 따로 작은 탁자를 붙이고 그 위에 커다란 코오피 잔을 올려 놓았다. 소설은 발자크의 꽁무니에도 못 미치면서― 파코레터에 두 사람분의 모카가루를 분량하여 넣으면서 나는 은근히 유라를 관찰하였다. 요전 음악회에 갔던 때보다도 더 여윈 듯하다. 자부죽이 숙인 고개 밑으로 콧등이 오똑 솟고 눈두덩 밑이 낭떠러지같이 푹 빠졌다. 그 속은 산골짝에 잠긴 조그마한 호수와도 같다. 기다란 속눈썹은 호숫가에 밋밋하게 늘어선 전나무 수풀이다. 창백한 두 복―좀더 실팍하였건만 지금에는 대패로 민듯이 팽팽하게 가드러 들었다. 그가 보고 있는 그림은 슬픈 그림이다. 하아얀 시이트 위에 누운 병든 소녀의 그림이다―깊게 빠진 눈 위는 검게 그림자 지고 까스러든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그 그림자 속에서 구슬같이 빛났다. 검게 질린 입술 사이로 두어 대의 이가 힘없이 드러나 보이고 열어 헤친 가슴 위에 옷섶이 어지럽다. 그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던 유라는 책장을 번기면서 문득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쳐들었다. 반짝하는 맑은 눈방울이 호수 속에 비친 별 그림자와도 같다. 미소를 띠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지새는 달그림자와도 같이 여린 것이요 그의 표정은 마치 그가 들여다보고 있던 그림 속의 소녀의 그것과도 같이 애잔하고 슬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