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소개 궁녀 운영과 김 진사와의 지고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 은 이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는 유영의 이름을 따서 유영전(柳泳傳) 이라고도 하고 또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궁녀 운영의 이름을 따서 운영전雲英傳 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한문 중편소설이다. 작품상의 배경만 선조조로 알려져 있을 뿐 지은이와 창작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글본과 한문본이 함께 전해지고 있으나 한문 필사본이 원작이다. 1925년 영창서관(永昌書館)에서 간행한 한글 번역본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야기가 부분적으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줄거리는 대체로 동일하다. 한글본은 한문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이본(異本)으로 추정된다. 한문 필사본으로는 서울대학교 일사문고본 · 규장각본 · 국립중앙도서관본 · 한글학회본 · 연세대학교본 · 김기동본(金起東本)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글본으로는 장서각본 · 이재수본(李在秀本)이 있고 활자본으로는 영창서관에서 펴낸 연정 운영전(演訂雲英傳) 이 전해지고 있는데 본 편역 작품은 국립중앙도서관본 한문본을 편역자가 소설 형식으로 재편집해 번역했다. 이밖에도 일본의 도요문고본(東洋文庫本 동양문고본) 과 덴리대학본(天理大學本과 천리대학본) 영남대학교본 정병욱본 김동욱본 등이 전해지고 있으나 선임연구자들의 후기에 따르면 내용은 대동소이하다고 한다. 몽유의 형식에다 3개의 액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조선시대의 고전소설 중에서도 남녀 간의 애정을 미화한 대표적인 작품일 뿐 아니라 결말을 비극으로 처리한 유일한 소설이다. 궁녀들의 구속적인 궁중생활에 대한 번민과 궁녀의 신분적 해방을 주제로 하고 있다. 작품 구성상의 특징은 화자로 등장하는 청파사인 유영에 관한 이야기가 외부 이야기이며 궁녀 운영과 김 진사에 관한 이야기가 내부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3개의 액자로 구성되어 있는 몽유의 형식이나 사건 전개가 빠르고 사실감을 갖추고 있어 격조 높은 염정소설(艶情小說 연애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 소설은 작품 창작 당시 조선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나 인성문제를 관념적으로 안이하게 처리하지 않고 경험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압권이다. 거기다 궁중에 갇힌 궁녀들의 가련한 정신생활과 몸부림치는 사랑의 한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있으며 17세기 조선 봉건사회의 궁중이라는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쟁취할 수 있도록 작품 배경을 설정한 작가의 시대의식이 높게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 작품 줄거리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4년(1601)의 어느 봄날이다. 지금의 청파동에 살던 유영 이란 선비는 세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호탕한 생애를 보내던 중 세조의 왕위 찬탈 후 억울하게 주살된 안평대군의 사저였던 인왕산 기슭의 수성궁(壽聖宮)에 봄놀이를 간다. 수성궁 가운데서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서쪽 동산으로 들어간 유영은 바위에 걸터앉아 소동파의 시를 읊조리며 가지고 갔던 술병을 풀어 다 마시고 취하여 잠이 든다. 그러다 꿈결에 주위를 살피던 중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와 다가가 보니 한 소년이 절세미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이들은 유영이 다가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들이 곧 운영 과 김 진사 인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유영에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궁녀 운영의 고향은 본래 남방으로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 삼강오륜과 당나라 시를 배우며 성장했으나 13세 때 안평대군의 부름에 따라 입궁했다. 풍류를 좋아하던 안평대군은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궁녀 10명을 뽑아 별궁에 두고 시와 문을 배우게 하며 이들에게 궁 밖에 나가서도 안 되며 궁 밖의 사람들 가운데 궁녀의 이름을 아는 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온 안평대군이 궁녀들을 불러놓고 연기를 주제로 한 부연시를 짓게 한다. 그때 안평대군은 궁녀들이 지어올린 시를 보고 난 뒤 운영의 시 속에 외로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감이 담겨져 있음을 알고 운영을 추궁한다. 운영의 시에 외로움이 배인 사연은 까닭이 있다. 하루는 김 진사라는 나이 어린 선비가 수성궁을 방문해 시를 짓는데 안평대군이 운영으로 하여금 벼루 시중을 들게 한 것이다. 운영은 김 진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사모하게 되고 이후 김 진사는 수성궁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만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운영은 문틈으로 엿보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몰래 김 진사에게 전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다른 궁녀들과 김 진사의 하인인 특(特) 의 도움을 받아 수성궁의 담을 넘나들며 더욱 깊어 간다. 그러다 겨울철 궁중 담 안에 내려 쌓인 눈밭에 김 진사의 발자취가 드러나게 되고 운영이 지은 시와 김 진사가 지은 상량문에서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서 안평대군은 운영을 의심한다. 이런 정황 속에서 자신들의 밀회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던 운영은 궁을 벗어날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운영과 절친하던 궁녀 자란 은 만류한다. 고민하던 운영이 드디어 수성궁을 탈출하고자 하지만 운영의 재물을 탐내던 김 진사의 노복 특 이 배신하여 두 사람의 밀회는 드러나고 만다. 크게 노한 대군이 운영과 다른 궁녀들까지 죽이려 하자 궁녀들마다 나서서 운영을 변호한다. 이에 분노가 누그러진 대군이 운영을 별궁에다 가두지만 그날 밤 운영은 비단 수건으로 목매어 스스로 죽는다. 운영이 죽자 김 진사는 절에 가서 운영의 명복을 비는 재를 올린 다음 슬픈 마음이 병이 되어 죽는다. 김 진사와 운영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세인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한다. 유영이 다시 취중에 졸다가 깨어 보니 김 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만 남아 있었다.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그가 언제 이승의 삶을 다 살고 저승으로 떠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