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내성의 장편 추리소설.
1919년 평화의 동산 삼천리강토를 피로 물들인 기미년 3월 중순의 일이었다. 민족 자결의 고매한 이상 밑에서 일제히 일어선 삼천만 민중은 ‘내 땅을 내라!’ ‘내 자유를 내라!’ 하고 목구멍에서 피를 쏟아 가면서 힘차게 부르짖은 3월 1일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3월 1일은 마침내 힘없는 민족의 쓰라린 비애와 함께 저물어 버렸던 것이니 삼천리강산 방방곡곡에 무섭게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사람들은 그날그날을 학살과 투옥과 암흑과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맞이하였다. 애국자들은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그 무자비한 통치자의 손을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어떤 사람은 중처럼 고깔을 쓰고 어떤 사람은 상주처럼 방갓을 깊이 내려 쓰고 어떤 사람은 여복을 입고 어떤 사람은 거지처럼 변장하여 가면서 혹은 해안선에서 밀선을 타고 혹은 육로로 압록강 다리를 건너서 해외로 망명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무단 정치의 세포 조직은 방방곡곡에서 그 잔인한 눈초리를 희번덕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관헌의 눈을 피하여 몰래 해외로 빠져나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