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진중에는 우리나라 사람 통역(通譯)에 김모(金某)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나이 아직 이십 세 내외에 불과하였으나 인물이 천하 미남자로 잘 생기고, 말재주가 능하여 얼마 배우지 않았건만 명나라 말을 아주 유창하게 잘하고, 성질이 또한 기민하고 영리하니, 이여송이 특별히 사랑하고 귀여워하여 밤과 낮으로 잠시라도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밥을 먹어도 같이 먹고, 잠을 자도 같이 자니, 그의 총애는 비록 이여송의 애첩이라도 따를 수가 없고, 따라서 김 역관의 말이라면 모두 언청계용(言聽計用)을 하게 되니, 그 진중에서 그의 세력이란 여간 크지 않아, 누구나 이여송에게 무슨 긴요한 중대한 일이나 청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김 역관에게 먼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임진란이 끝이 나서 이여송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니 김 역관도 역시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